2년 7개월째 멈춰있던 고리 원자력발전소 2호기가 지난 13일 수명 연장 허가를 받으면서 발전소의 '가성비'를 나타내는 지표인 '균등화발전비용(LCOE·Levelized Cost of Electricity)'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개선될 전망이다.

균등화발전비용은 발전소를 만든 후 가동을 중단할 때까지 발전소를 건설하고 운영하는 데 들어간 총비용을 발전소에서 만든 발전량으로 나눈 값이다. 1메가와트시(MWh)당 달러로 표기하는 균등화발전비용은 낮을수록 효율적인 발전소라는 뜻이다. 1MWh를 발전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적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발전소 건설비가 상대적으로 많이 들지만, 연료비는 낮은 원전의 경우 발전소 사용 기간이 길수록 발전량이 늘어나 균등화발전비용이 낮아지는 효과를 볼 수 있다.

부산 기장군 한 마을에서 본 고리 원전. 오른쪽부터1,2,3,4호기. 붉은 점선원이 2호기다. / 연합뉴스

17일 원전업계에 따르면 고리 2호기는 1977년 5월 착공 당시 기준 5916억원(외자 5억4000만달러, 내자 2805억원)을 들여 건설했다. 고리 2호기를 2033년 4월 8일까지 추가로 사용할 수 있게 되면서 그만큼 더 많은 전력을 만들어낼 수 있고, 균등화발전비용은 낮아진다. 원전 건설에 든 막대한 비용을 고려하면 더 효율적인 선택인 셈이다.

◇ 韓 1호 '계속 운전' 원전 고리 1호기 LCOE, 신규 대형 원전보다 낮아

원전을 계속 운전하면 균등화발전비용이 낮아진다는 것은 이미 입증됐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이 지난 2024년 발간한 '원전 계속 운전의 효용성과 제도 개선 방안' 보고서를 보면 한국 1호 계속 운전 원전이었던 고리 1호기의 균등화발전비용은 MWh당 21달러로 대형 원전(MWh당 36달러)을 신규로 짓는 것은 물론 석탄 발전(MWh당 48달러), 액화천연가스(LNG) 복합 화력발전(MWh당 90달러)보다 낮았다.

해당 보고서를 작성한 이기복 원자력학회 학회장은 "고리 1호기를 최초 운전한 30년 동안 원전 건설비는 발전단가에 포함됐기에 계속 운전을 하는 기간에는 설비개선비, 연료비, 인건비만 들어간다"며 "계속 운전을 하는 동안 균등화발전비용이 낮아지는 효과가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그래픽=정서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산하 원자력기구(NEA)도 비슷한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NEA는 '발전원가전망보고서 2020년판'에서 고리2호기와 같은 경수로(고온의 물을 가압해 증기를 만드는 방식) 원전의 수명을 20년 연장한다는 가정 아래 개보수 비용과 발전량을 계산하면 균등화발전비용이 1MWh 당 약 30~50달러가 될 것이라고 계산했다.

NEA는 "원전을 장기 운영하면 원전 투자비의 80%를 차지하는 건설비가 크게 감소해 경제적"이라며 "기존 원전을 장기 운전해 생산된 전기는 경쟁력이 매우 높으며 신규 원전 건설과 비교하는 것은 물론 모든 발전과 비교해도 가장 저렴한 옵션"이라고 했다.

원전의 균등화발전비용은 재생에너지보다도 작다. 글로벌 에너지 조사 기관인 블룸버그신에너지금융연구소(BNEF)가 지난 9월 분석한 바에 따르면 2024년 기준 한국의 태양광 균등화발전비용은 1MWh당 98달러로 계속 운전(1MWh당 21달러)은 물론 신규 대형 원전(1MWh당 36달러)보다 비쌌다. 글로벌 평균(1MWh당 35달러)과 비교해도 2.8배다.

풍력 발전의 균등화발전비용은 태양광보다 더 컸다. 한국의 육상풍력 발전 균등화발전비용은 1MWh당 126달러로 글로벌 평균(1MWh당 37달러)의 3.4배다. 해상풍력 발전 균등화발전비용은 1MWh당 300달러로 글로벌 평균(1MWh당 79달러)의 3.7배에 달했다.

◇ 韓 계속 운전 10년 단위로 승인…20년 단위보다 경제성 떨어져

우리나라는 원전 계속 운전 허가를 10년 단위로 주는데, 실질적으로 가동하는 기간은 더욱 짧다. 심사가 늦어져 운영 허가 만료일 이후에도 결론이 나지 않으면 원전을 멈추기 때문이다. 한국과 달리 미국은 가동 중단 최소화를 위해 계속 운전을 20년 단위로 승인하며, 운영 허가 만료일 이후에도 임시 가동을 허용한다.

정용훈 카이스트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우리나라 승인 단위도 20년으로 늘어난다면, 고리 2호기와 같이 심사에만 3년 가까이 걸려 운영 만료 후 멈추더라도 20년이 보장돼 실제 운전 기간은 더 길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래픽=정서희

설비 투자 비용 회수 측면에서도 10년보다 20년이 유리하다. 한국수력원자력은 고리 2호기 수명연장을 위한 신규 투자비로 3100억원(지역상생비 1300억원 포함)을 책정했다. 보통 설비 투자는 한 번에 지출된다. 같은 비용을 투자해도 회수 기간이 2배로 늘어나면 원자력의 균등화 발전비용이 낮아져 더 경제적이다. 한수원 관계자는 "설비 수명이 10년보다 긴 게 많다. 20년을 사용하는 게 설비 투자 비용이 더 적다"고 말했다.

계속 운전을 20년 단위로 하면 행정 비용도 줄일 수 있다. 안전성 평가(PSR), 인허가 심사 등 10년마다 반복하는 행정 절차를 절반으로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한수원은 PSR 보고서를 규제기관인 원자력안전기술원(KINS)에 제출해 심사받는다. 이 보고서를 기반으로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원전의 계속 운전 여부 등을 결정한다. 심사 부담금은 20억원 정도로 알려졌다. 한수원이 보고서를 작성하는 데도 따로 비용이 들어간다. 막대한 설비 투자비에 비하면 미미하지만, 예산, 인력 등 행정 낭비를 줄일 수 있다.

◇ 갈수록 비싸지는 원전 건설비, 해체·신규 건설보다 연장이 경제적

원전 건설 비용은 해마다 늘어나는 추세다. 전반적인 건설 원가가 상승한 가운데 원전에 대한 추가 안전설비 설치, 규제 요건 강화도 잇따라서다. 원전 건설비 증가를 감안하면 기존 원전 가동을 중지하고, 그에 따라 부족해진 전력을 공급할 신규 원전을 짓는 것보다 기존 원전 수명을 연장해 사용하는 것이 경제적이다.

한국 최초의 상업용 원전인 고리 1호기의 건설비는 1971년 착공 당시 1560억원으로 경부고속도로 건설비(428억원)보다 약 3.6배 많았다. 2024년 건설 허가를 받아 현재 짓고 있는 경북 울진 신한울 3·4호기 건설비도 약 11조6000억~11조7000억원에 달한다. 1기당 건설비만 5조8000억~5조8500억원인 셈이다.

고리 1호기의 유지보수 비용은 운영 중이었을 당시 기준으로 연간 약 800억~1000억 수준이다. 신규 건설과 비교할 수 없이 싼 셈이다. 게다가 가동을 중단한 원전의 해체를 결정하면 해체 비용이 추가로 들어가는 점도 고려 요인이다. 고리 1호기는 상업 원전으로는 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해체에 들어간다. 그런데 해체 작업에만 1조713억원(해체 작업 8088억원, 폐기물 처분 2625억원)이 투입될 예정이다.

한국수력원자력 전경. / 뉴스1

유럽연합(EU) 자료를 봐도 신규 원전 건설보다, 기존 원전의 수명 연장이 비용 절감 효과를 볼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유럽위원회는 지난 6월 현재 98기가와트(GW) 규모인 원전 발전 용량을 2050년까지 109GW로 확대할 계획을 세웠다. 이를 위해 신규 원전을 지으려면 2050억 유로를 투자해야 하지만, 기존 원전 수명을 연장할 경우 공공 및 민감 자금을 모두 포함해 360억 유로면 된다. 신규 원전 건설을 위해선 원전 수명 연장보다 5.6배의 자금이 필요한 것이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원전 수명 연장에 들어가는 비용은 신규 원전 건설 비용의 25~50%에 불과한 만큼 원전은 가장 비용 효율적인 방법"이라며 "원전 연료 비용 역시 화석 연료보다 일반적으로 낮기에 증기 발생기, 터빈, 안전장치 등 주요 시스템만 개선하면 기존 원전 효율을 높여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래픽=정서희

◇ 세계 추세 '원전 수명 연장', 10년 연장하면 세계 전력 수요 1년분 저탄소 전력 발전

원전 수명 연장은 이미 세계적인 추세로 자리 잡았다. 지난해 12월 기준으로 전 세계에서 가동 중인 원전 439기 가운데 설계 수명을 넘겨 사용하고 있는 원전은 204기(46%)에 달한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전 세계 원자력발전소 수명을 10년 연장할 때 2만6000테라와트시(TWh )의 저탄소 전력이 생산된다고 지난 2020년 예상했다. 지난 40년 동안 원전이 생산한 전력량의 절반 이상에 해당하는 수치이면서 현재 세계의 전력 수요의 약 1년 분에 해당한다.

원자력발전소의 수명 연장은 세계가 저탄소 발전 능력을 확대하는 동안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데도 도움이 된다. 또한 원전을 계속 운전하면 원전의 안전성은 더욱 높아진다. 발전소의 장기 운영, 계속 운전을 위한 지속적인 설비 개선과 안전 설비 보강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고리 1호기의 경우 상업 운전이 시작된 1978년 이후 초기에는 빈번하게 불시 정지가 발생했으나, 가동 연수가 증가하면서 불시 정지가 오히려 줄었다. 특히 계속 운전이 시작된 2008년 이후 영구 폐쇄될 때까지 불시 정지 건수는 2건에 불과하다.

이기복 원자력학회 학회장은 "보통 원전이 오래되면 위험하다고 하는데, 그렇지 않다. 계속 운전하려면 수천억원을 들여 새로 부품을 갈아 끼우고, 시설도 보완하고, 더 높은 기준의 안전성 평가도 통과해야 한다. 10년을 견디는 것보다 20년을 견디게 하는 게 더 까다롭다. 가동 기간이 길어질수록 원전은 더 안전해진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