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송전망에 설치된 효성중공업 765kV 초고압 변압기./효성중공업

인공지능(AI) 붐으로 전력 인프라 수요가 급증한 가운데, 국내 3대 전력기기 업체들의 4분기 실적 전망이 엇갈리고 있다. HD현대일렉트릭과 효성중공업은 초고압 변압기 시장에서 전례 없는 공급 부족의 수혜를 입으며 이익 전망치가 잇따라 상향 조정되는 반면, 후발주자인 LS일렉트릭은 실적 기대치가 낮아지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

◇ '부르는 게 값' 초고압 변압기 사업이 판 갈라

14일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HD현대일렉트릭의 올 4분기 영업이익 컨센서스(증권사 전망치 평균)는 전날 기준 2761억원으로, 1개월 전보다 4.8%, 3개월 전보다 11.6% 올랐다. 효성중공업의 영업이익 전망치도 2123억원으로 1개월 전 대비 11.5%, 3개월 전 대비 14.6% 높아졌다. 반면 LS일렉트릭의 4분기 영업이익 전망치는 1225억원으로, 1개월 전보다 5.1%, 6개월 전보다 13.4% 낮아졌다.

이 같은 흐름은 연간 실적 전망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난다. HD현대일렉트릭과 효성중공업의 올해 영업이익 예상치는 각각 9506억원, 6692억원으로 6개월 전 대비 꾸준히 상향됐다. 반면 LS일렉트릭의 영업이익 전망치는 4207억원으로 같은 기간 10% 넘게 하향 조정됐다.

HD현대일렉트릭과 효성중공업의 예상 이익 눈높이가 갈수록 높아지는 건 이들 기업이 우위를 점한 AI 데이터센터발 초고압 변압기 수요가 폭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초고압 변압기는 발전소에서 생산된 전력을 공장·도심·데이터센터 인근 변전소까지 보내는 과정에서 전압을 변환하는 핵심 장비다.

초고압 변압기는 대부분 수작업으로 제작되고, 숙련 인력이 필수적이라 단기간에 생산량을 늘리기 어렵다.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글로벌 시장에서 소수의 선도 업체는 '부르는 게 값'인 상황을 맞고 있다.

특히 미국 빅테크가 주문하는 765kV(킬로볼트)급 초대형 변압기를 생산할 수 있는 곳은 전 세계적으로 HD현대일렉트릭과 효성중공업을 포함해 5곳 정도에 불과하다.

이에 이들 기업의 수익성은 가파르게 좋아지고 있다. 북미 초고압 변압기 시장 점유율 1위인 HD현대일렉트릭은 3분기 영업이익 2470억원, 영업이익률 24.8%를 기록하며 분기 기준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효성중공업도 초고압 변압기를 담당하는 전력사업부의 3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101% 증가한 1927억원, 영업이익률 18.7%를 기록했다.

수주 잔량도 사상 최대다. HD현대일렉트릭은 3분기 미국 텍사스 최대 전력회사로부터 765kV 초고압 변압기 등 2580억원 규모의 물량을 수주했다. 이를 포함해 3분기 말 기준 HD현대일렉트릭의 수주잔고는 약 10조원, 효성중공업의 변압기 등의 수주잔고는 약 11조원이다. 업계에서는 "이미 5~6년 치 일감이 쌓인 수준"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 LS일렉트릭, 초고압 격차·신재생 사업 부담

반면 LS일렉트릭은 초고압 변압기 사업 자체가 아직 작은 편이다. 3분기 매출이 887억원에 그쳐, 효성중공업에서 초고압 변압기 사업을 담당하는 전력사업부(매출 약 1조원)나 HD현대일렉트릭 전력기기 부문(약 5900억원)과는 규모 차이가 뚜렷하다.

LS일렉트릭은 대신 배전 분야에서 강점을 갖고 있다. 초고압 변압기(송전)가 발전소에서 변전소까지 이어지는 '전력 고속도로'라면, 배전은 변전소에서 서버 랙까지 전력을 세분화해 공급·제어하는 '구내 전력망' 역할을 한다. AI 데이터센터 확장으로 배전 수요 역시 증가하고 있지만, 초고압 변압기 시장만큼 공급자가 제한적이진 않다.

업계 관계자는 "과거에는 배전 마진이 더 좋았지만 초고압 변압기 공급난이 심해지며 두 시장의 수익성 차이가 커지고 있다"며 "배전은 참여 기업이 상대적으로 많아 가격 상승 폭이 제한적"이라고 말했다.

LS일렉트릭의 신재생 사업이 수익성에 부담을 주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증권가에서는 LS일렉트릭이 3분기 태양광 발전소 EPC(설계·조달·시공) 및 ESS(에너지저장장치) 사업 등에서 115억원 규모의 영업손실을 낸 것으로 추정한다.

이런 영향으로 3사 간 영업이익률 전망도 차이를 보이고 있다. 교보증권은 HD현대일렉트릭의 영업이익률이 올해 20.1%에서 내년 24.5%로, 효성중공업은 7.4%에서 14.4%로 오르는 반면 LS일렉트릭은 8.6%에서 10%로 오르는 수준에 머물 것으로 내다봤다.

LS일렉트릭은 후발주자로서의 격차를 줄이기 위해 이달 말부터 증설된 부산 공장에서 초고압 변압기 양산을 시작한다. 정혜정 KB증권 연구원은 "LS일렉트릭은 부산 초고압 변압기 공장 증설로 올해 말부터 연간 생산 능력이 2.5배가량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며 "배전 사업과 빅테크향 수주가 더해지면 올해 조정기를 거친 뒤 내년 이후부터 성장 폭이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