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사 핵심 수익 지표인 정제 마진이 연일 오르면서 국내 정유 4사(SK이노베이션(096770), GS칼텍스, HD현대오일뱅크, S-Oil(010950))가 4분기에도 호실적을 이어갈 전망이다. 정제 마진은 석유 제품 판매 가격에서 원유 가격 등 생산 비용을 뺀 값이다. 최근 원유 가격이 하락하는 가운데 전 세계 정제 설비 수가 줄면서 정제 마진이 연일 오르고 있다.
12일 정유업계에 따르면 이달 초 싱가포르 복합 정제 마진은 배럴당 16달러 선으로, 2년 2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싱가포르 복합 정제 마진은 아시아 지역의 정유 회사들이 원유를 정제해 휘발유, 경유, 나프타, 항공유 등 석유 제품을 팔고 남긴 평균 이익을 의미한다.
보통 정유사들의 손익분기점이 되는 정제 마진은 배럴당 4~5달러로 알려졌다. 이보다 높으면 흑자, 낮으면 적자가 발생한다는 의미다. 다만 정유사마다 원유 수입처, 제품 포트폴리오가 달라 싱가포르 정제 마진과 정유사 정제 마진이 반드시 일치하는 건 아니다.
최근 원유 가격이 하락하면서 석유 제품 생산 비용은 감소하는 추세다. 두바이유 선물 가격은 올해 1월 평균 80달러 선에서 움직였으나 이달 65달러 수준으로 떨어졌다. 브렌트유와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근원물도 각각 63달러, 59달러 선에 가격이 형성된 상태다.
원유 생산량이 늘어날 예정이어서 향후 가격은 더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주요 산유국들이 모인 협의체 OPEC+는 다음 달 원유 생산량을 하루 13만7000배럴 증산하기로 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내년 원유 공급이 수요를 하루 최대 400만 배럴 초과할 것이라 전망하기도 했다.
원유 공급 과잉이 이어지자 세계 최대 석유 회사인 사우디아람코는 12월 아시아향 원유 판매 고시 가격(OSP)을 기존 가격 대비 배럴당 1.2달러 낮춘 1달러로 결정했다. OSP는 국내 정유사에 원유를 판매할 때 적용하는 프리미엄이다. OSP가 떨어지면, 국내 정유사들도 더 낮은 가격에 원유를 살 수 있다.
유럽에서는 올해 3월부터 셸(Shell), BP 등이 정유 시설을 폐쇄하면서 생산 능력이 일일 40만 배럴씩 줄었다. 미국에서도 올 초부터 리온델바젤, 발레로 등이 차례대로 정유 설비를 줄이고 있다. 내년 1분기까지 일일 54만7000배럴 규모의 정제 설비를 폐쇄할 예정이다. 이는 유럽, 미국 전체 설비의 각각 3%에 해당한다. 해외 정유사들은 경기 불황에 따른 석유 제품 수요 감소, 탄소 중립 기조 강화 등으로 정제 설비를 줄이는 추세다.
정제 마진이 개선되면서 국내 정유 4사가 3분기에 이어 4분기에도 호실적을 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SK이노베이션의 4분기 예상 영업이익은 3087억원, S-Oil은 2915억원으로 나타났다. 비상장사인 HD현대오일뱅크, GS칼텍스도 비슷한 사업 구조를 갖고 있어 흑자를 이어갈 전망이다.
최근 원·달러 환율이 크게 오르면서 원가 부담이 늘어난 점은 실적 개선에 다소 제약 요인이다. 그러나 정유사들이 환율 변동에 따른 손실을 줄이기 위해 환헤지(Hedge·위험 회피)를 적극 사용하는 데다 제품 가격에 반영하기 쉬운 상황이라 부담은 미미한 상황이라고 업계 관계자들은 판단하고 있다.
한편 정유사 체질이 차츰 개선되면서 일각에서는 석유화학 구조조정 방안에 정유사와 석유화학사를 수직 통합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정유사가 석유화학 설비를 인수·운영해 원유 정제 부산물을 석유화학 원료로 활용하는 방식이다.
한 정유업계 관계자는 "정유, 석유화학 설비 간 연계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막대한 초기 비용이 필요하다"면서 "아직 석유화학 구조조정 관련해 구체적으로 논의되고 있는 건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