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Korea Destroyer neXt generation) 착수금 성격으로 잡은 예산을 사실상 사용할 수 없게 되면서 상세 설계 및 1번함 건조 사업자가 정해져도 계약은 진행할 수 없게 됐다. KDDX 사업 방식은 방위산업추진위원회(방추위)에서 의결돼야 계약 등 절차를 진행하는데, 방추위는 국회의 내년도 예산안 시기와 맞물리면서 다음 달에야 열릴 전망이다.
10일 군 당국과 방산업계에 따르면 방사청은 12월 중 방추위를 개최하기 위해 일정을 조율하고 있다. 방사청은 이달 내 방추위에서 사업 방식이 의결되면 올해 예산안에 포함된 KDDX 사업 착수금을 이월시켜서라도 집행할 예정이었는데, 방추위 자체가 밀리면서 이 예산은 '불용 예산(집행되지 않은 예산)'이 됐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KDDX 사업이 첫발을 떼지 못하면서 전력화는 더 늦어질 전망이다. KDDX 사업은 2030년까지 7조8000억원을 투입해 선체, 전투 체계, 레이더 등이 포함된 이지스 구축함 6척을 국내 기술로 만드는 사업이다.
방사청 관계자는 "중기 계획에 따라 해마다 예산이 편성돼 있어 (착수금이) 불용 예산이 됐더라도 문제는 없다"며 "전력화 계획에 차질이 없도록 사업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14일 열리는 사업관리 분과위원회(분과위)에선 국회 등에서 거론된 상생 협력안이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KDDX의 사업 방식을 두고 HD현대중공업(329180)은 수의계약을, 한화오션(042660)은 경쟁입찰을 주장하며 갈등이 있는데, 두 기업의 상생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취지다. 상세 설계 과정에서 두 기업의 협력 또는 1·2번함 동시 발주, 공동 개발 등이 거론되고 있다. 방사청은 기본 설계 수행 업체에 상세 설계를 맡겨야 한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KDDX를 두고 논란이 이어지자 정부와 여당이 나서 비공개 당정협의회까지 개최했지만, 특별한 소득 없이 마무리됐다. 상세 설계를 두 업체가 나눠서 하면 기술 유출 우려가 있고, 2번함을 특정 업체가 맡도록 유도하는 방안은 담합 문제로 비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HJ중공업(097230)과 SK오션플랜트(100090) 등 다른 조선업체도 KDDX 사업 입찰을 준비하고 있다.
한 중견 조선업체 관계자는 "상생은 대기업과 협력 업체가 하는 것인데, 경쟁자인 두 대기업(HD현대중공업, 한화오션)의 상생이 가능한지 모르겠다"며 "이러다 KDDX 사업 자체가 취소되면 협력 업체는 기대했던 일감이 크게 줄어든다"고 말했다.
군 안팎에서는 2년이나 지연된 KDDX 대신 2번함의 전력화까지 시작된 정조대왕급 이지스 구축함을 추가 도입하자는 의견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