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상반기 국내 산업재해(이하 산재)로 1120명이 사망했으며, 이 중 절반 가까이가 건설업 현장에서 발생했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과 기술 발전으로 인한 안전 예방 시스템의 확산에도 산재 사망자 수는 전년 동기 대비 87명 늘어나며 역행하고 있다. 특히 60대 이상 고령 근로자 사망자가 40명 증가하는 등 고령 근로자를 위한 맞춤형 안전 예방 시스템 구축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대해 노동부 근무 경력이 있는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 안전공학과 교수는 "우리나라가 산재 공화국 오명을 벗기 위해서는 제재 강화 중심의 행정이 아니라 예방 중심의 정교한 시스템으로 전환해야 한다"며 "특히 사망자 수가 증가한 고령 근로자의 신체·정신 기능 저하에 대응하는 특화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현재 우리나라의 산재 예방 수준을 어떻게 보나.
"건설 착공 면적, 현장·취업자 수가 크게 줄었음에도 여전히 건설업이 사망 사고의 절반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정부와 기업이 안전 투자를 늘리고 자동화 시스템이 늘었음에도 성과가 미미한 것은 심각한 문제다. 객관적으로 사망 사고가 감소할 요인이 많았음에도 결과가 개선되지 않은 현실을 감안하면, 우리나라 산재 예방 수준은 여전히 미흡하다고 본다."
고령 근로자의 산재 사고가 증가하고 있나.
"고령 근로자의 신체·정신 기능 저하에 대응하는 특화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고령 근로자는 근력과 균형감, 주의력, 반응속도 등이 부족해 일반 근로자보다 사고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높은 곳에서 작업하던 공정을 지상에서 수행할 수 있도록 바꾸는 '고소 작업 지상화'가 필요하다. 아울러 사다리식 승강은 피하고, 계단이나 경사면 방식으로 승강 설비를 개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인구 고령화로 인해 고령 근로자가 많아지는 만큼, 고령 근로자 안전 가이드라인이 조속히 마련돼야 한다."
반복되는 '떨어짐·끼임' 등 사고를 줄이기 위한 핵심 과제는 무엇인가.
"선진국에서도 유사한 유형의 사고가 있지만, 우리나라처럼 비중이 줄지 않고 지속되는 것은 문제다. 이를 해결하려면 정부가 법과 제도를 실효성 있게 정비하고, 기업의 자율 안전 활동이 활성화할 수 있도록 예방 기법을 개발해 안내하고 지도해야 한다. 영국·일본·독일·미국 등은 안전 보건 관리 시스템과 위험성 평가를 정교하고 충실하게 마련해 기업이 자율적으로 예방할 기준을 상세하게 제공한다."
산재 예방 정책 수행을 위한 예산·인력 투입에도 산재가 줄지 않는 이유는.
"법·제도, 예방 인프라, 전문성 등 산재 예방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는 부실한 시스템을 방치하거나 오히려 악화시키면서 조직과 인력을 늘려 법 위반 적발에 집중하고 있다. 산업 현장은 '불 끄기식 대응'과 서류 작성에 매몰돼 있으며, 정작 중요한 현장의 안전 역량은 강화되지 않고 있다. 실질적 안전 능력이 향상되지 않는다면 산재 감소 효과를 거둘 수 없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재 중심 법이라는 지적도 나오는데.
"산재는 대부분 위험을 인식하지 못해 발생한다. 산업 안전 영역은 일반 범죄와 달리 결과 발생에 고의성이 없다. 따라서 예방 주체가 '무엇이 위험하고 어떻게 조치해야 하는지'를 명확히 인식하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러한 예방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으면 아무리 제재를 강화해도 형식적 대응에 그칠 뿐이다. 법·정책 집행은 사전 예방에 초점을 맞추고, 형사처벌 같은 제재는 최후의 수단으로 삼아야 한다. 산재 예방 선진국은 제재보다 기업이 산재 예방을 더 쉽게 할 수 있도록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의 효과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중대재해처벌법은 법의 생명이라 할 수 있는 '예측 가능성'과 '이행 가능성'이 부족하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산업안전보건법과 중복되거나 충돌하는 조항이 많고 내용 또한 모호하다. 이 때문에 전문가조차 해석이 엇갈리며, 주무 부처조차 명확한 답변을 내놓지 못하는 사례가 빈번하다. 법 집행이 처벌 중심으로 이루어지면서 기업이 재해의 근본 원인을 찾으려는 노력을 주저하는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 그 결과 사회가 재해로부터 배울 소중한 기회를 잃고 있다."
한국과 산재 예방 선진국의 차이는 무엇인가.
"산재 사고가 비교적 적은 선진국은 산업 현장에서 사고 예방 시스템이 정교하다고 평가 받고 있다. 반면 한국은 제재 강화와 행정조직 확대에 매몰되어, 예방 시스템의 질적 개선에는 소홀했다. 그러나 예방 체계가 허술한 상태에서 제재만 강화해선 실질적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예방 시스템 내실화가 선행돼야 한다."
산재 공화국 오명을 벗기 위한 정책을 제안한다면.
"'군기 잡기식 대책'에서 벗어나 실사구시적 해법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를 위해선 정확한 현실 인식과 정교한 방법론이 필요하다. 그러나 최근 발표된 '노동 안전 종합 대책'에는 과거 정책에 대한 분석과 성찰이 부족하다. 제재 강화 결론을 미리 정해놓고 이에 맞춘 듯한 인상이 강하다. 정책 근거가 부족하고 보여주기식 대책이 많다. 산재를 줄이기 위해선 정책 결정자의 진정성과 전문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말이 아닌 실질적 변화가 필요하다."
Plus Point
벌써 시행 4년 중대재해처벌법, 산업·노동계 모두 '불만족'
중대재해처벌법은 산재 발생 시 경영 책임자까지 형사처벌할 수 있도록 한 법이다. 법의 핵심은 '경영 책임자에게 안전 보건 확보 의무를 부과'한다는 점이다. 즉, 중대 재해가 발생하면 현장 관리자뿐 아니라 대표이사까지 형사처벌이 가능하다. 그러나 산업계는 과도한 경영자 책임 부담 및 모호한 가이드라인을 지적하고, 노동계는 법 실효성 강화와 정부의 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등 모두 불만족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2022년 1월 27일부터 상시 근로자 50명 이상(건설업 50억원 이상 공사) 사업장에 적용돼 시행됐다. 이후 3년 유예기간을 거친 2024년 1월 27일부터는 50인 미만 사업장에도 전면 확대 적용됐다.
산업계에서는 아직도 혼란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특히 규모가 작은 중소·중견기업에서는 "대표가 모든 사고를 예측·통제하기 어렵다"며 법의 '실무적 불가능성'을 지적하고 있다. 전문 인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의 경우 안전 관리 의무 이행 비용이 많이 드는 반면, 구체적 가이드라인은 여전히 모호해 산재 전문 로펌의 도움 없이는 대비하기 어렵다는 현장 반응이 나온다.
노동계는 오히려 법의 실효성이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은 지난 1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3년 동안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대상 중 산재 사망자만 약 1200명에 달하지만, 기소는 160건 중 74건에 불과하고 실형은 단 5건뿐이었다"며 "법의 실효성이 떨어진다. 정부는 처벌 강화보다 예방 감독 인력 확충과 제도 개선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