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서울 강남구 GS타워 27층. 작은 소비자가전쇼(CES)를 보는 것처럼 20여 개 부스가 꾸려져 있었다. 인공지능(AI) 접목과 디지털 전환(DX) 우수 사례를 소개하는 GS칼텍스의 '제3회 딥 트랜스포메이션 데이(Deep Transformation Day·DT Day)' 현장이었다.
가장 눈에 띄는 곳은 설비 관리 부스였다. GS칼텍스 여수 공장에서는 연간 40만톤의 수소가 생산된다. 생산된 수소는 공기를 압축하는 기계인 컴프레서를 통해 다른 공장과 설비로 옮겨진다. 그간 컴프레서가 고장 날 경우 빠른 대처와 수리가 요구됐지만, 대응은 담당자의 숙련도에만 좌우됐다. 과거 설비를 점검·수리하는 과정에서 축적된 경험과 지식들이 제대로 데이터화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GS칼텍스가 공정 운영 최적화 플랫폼 '애셋 플러스(Asset Plus)'를 도입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80만여 개의 장치·계기·배관 설비를 모두 데이터로 연결하면서 설비 관리를 하나의 플랫폼으로 관리할 수 있게 됐다.
예를 들어, 컴프레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애셋아이유에서 컴프레서를 검색하면 관련 문제 현상, 원인, 조치 등의 정보가 찾아졌다. 과거 작업자의 PC 엑셀 파일 등에만 남겨진 정보를 모두 애셋아이유에 마이그레이션(데이터를 다른 장치로 옮기는 행위)하면서 1700여 개의 정보가 검색됐다.
최창성 GS칼텍스 설비기획팀 책임은 "과거 담당자가 인사 등으로 새롭게 왔을 경우, 재교육이 필요하거나 점검·수리까지 숙련도가 올라오는 시간이 필요했다"며 "애셋플러스가 도입되면서 과거의 지식과 경험을 검색할 수 있어, 누구든지 빠른 대처가 가능해졌다"라고 말했다.
특히 AI가 설비의 수명과 점검, 교체 주기를 알아서 계산·관리하고, 진동을 분석해 설비의 이상 여부까지 확인할 수 있다. 이는 예방 점검 등을 통해 문제를 사전에 차단해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다. 작업자들의 고유의 경험과 지식은 데이터 자원화하면서, 단순 반복적인 작업은 AI에 맡기는 셈이다.
또 여수 공장에는 AI 폐쇄회로(CC)TV를 도입했다. 과거에는 상황실에서 사람이 직접 CCTV 영상을 보면서 상황을 탐지했다. 문제는 여수 공장이 여의도 면적의 2배에 해당하는 600만㎡(약 182만평) 규모라는 점이다. 사람이 24시간 모니터링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AI CCTV가 도입되면서부터는 AI가 불꽃, 연기, 침입자 등을 알아서 탐지하고 경고 메시지를 담당자들에게 전달한다. 현재까지 170여 대의 AI 카메라가 도입됐으며, 2년 간의 데이터 축적으로 정확도는 99%에 달한다는 게 GS칼텍스의 설명이다.
GS칼텍스의 AI 전환은 공장이 아닌, 사무실에서도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이은주 GS칼텍스 DX센터장은 최근 경력사원 면접을 준비하면서 사내 AI 플랫폼 '에이아이유(AIU)'를 활용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 센터장은 "과거에는 지원자 서류를 일일이 읽고 정리해야 했다"며 "이제는 AIU에 물어보면 주요 경력과 차별점을 정리해주고, 빠뜨릴 만한 질문까지 제안해주니 면접의 완성도가 높아졌다"고 말했다.
'스튜디오 발랄'의 부스도 이목을 끌었다. 스튜디오 발랄은 홍보 부문 PR2팀 구성원들이 자발적으로 결성한 AI 크리에이티브 그룹이다. 커뮤니케이션 통합 관리 시스템을 구축하고, 타 부서들과 협업해 지난 6개월간 자체 제작한 생성형 AI 영상 콘텐츠 20건을 선보였다.
GS칼텍스의 이러한 변화는 허세홍 사장의 의지에서 출발했다. 허 사장은 AI를 기업 경쟁력의 핵심 축으로 제시하면서 사내 AI 확산을 위해 지난 7월 임원들을 대상으로 AI 교육을 하기도 했다.
허 사장은 "AI는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우리의 사고방식과 일하는 방식을 바꾸는 새로운 동료"라며 "AI를 통해 더 빠르고 정교한 의사 결정과 창의적인 협업이 가능한 조직으로 발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