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관세 협상이 길어지면서 '마스가(MASGA·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 프로젝트가 표류 중이지만, 국내 조선업계는 협상이 완료될 때를 대비해 미국 시장 진출 준비 작업을 하고 있다. 마스가 프로젝트는 한·미 조선업 협력 프로젝트로, 국내 조선사는 미 군함 유지·보수·정비(MRO·Maintenance, Repair, Overhaul) 사업, 현지 투자, 기술 협력, 인력 양성 등을 추진한다.
한화오션(042660)은 미국 필라델피아 필리조선소(Philly Shipyard)를 인수하고 미 군함 MRO 사업을 연이어 수주하면서 마스가를 수행할 핵심 조선사로 주목받았다. 한화오션은 지난해 미 해군 군수 지원함인 '월리 쉬라(USNS Wally Schirra)호'와 7함대 소속 급유함 '유콘(USNS YUKON)호'의 정비 사업을 수주했다. 올해는 5~6척의 미 군함 MRO 사업 수주를 목표로 하고 있다.
그룹 차원에서도 새로운 기회를 찾고 있다. 한화그룹이 미국에 설립한 해운 계열사 한화해운(한화쉬핑)이 필리조선소에 중형 유조선(MR탱커) 10척과 LNG 운반선 1척을 발주하며 새로운 일감을 만들고 있다. 앞서 8월에는 미국에 50억달러(약 7조원)를 추가 투자하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HD현대중공업(329180)은 지난 8월 미 해군 7함대 소속 'USNS 앨런 셰퍼드(USNS Alan Shepard)'호 정비를 수주하며 첫 성과를 냈다. 미국 조선사인 헌팅턴 잉걸스, 에디슨 슈에스트 오프쇼어 등과 기술 협약을 맺으며 현지 시장 진출 기반을 다져왔다. 해외 조선소 인수도 계속 검토하고 있다.
현재 진행 중인 HD현대중공업·HD현대미포 합병이 연내 마무리되면, 미 군함 MRO 사업 경쟁력이 한층 강해질 것으로 기대한다. HD현대중공업은 미 군함 MRO 사업 진출의 전제 조건인 함정 정비 협약(MSRA·Master ship repair agreement)은 있었으나 기존 일감이 많아 미 군함 정비를 위한 독(Dock·선박 건조 설비)이 부족했다. 합병이 완료되면 HD현대미포 독을 미 군함 정비 공간으로 활용하는 게 가능하다.
삼성중공업(010140)은 미국 진출을 위한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현지 조선소와 기술 교류, 업무 협약 등을 준비하고 있다. MSRA가 없는 삼성중공업은 비전투함 MRO 사업 진출을 고려하고 있다. 기존에는 MSRA가 있어야 미 군함 MRO 사업에 참여할 수 있었으나 올해 1월부터는 군수 지원함 MRO에 한해 MSRA가 없어도 입찰할 수 있도록 규정이 바뀌었다.
중형 조선사들은 미 함정 MRO 사업을 향후 핵심 먹거리로 보고 있다. MRO 사업은 신조(新造·새로 만듦)보다 마진율이 낮지만, 정비 수요가 많아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일감이 될 수 있다.
HJ중공업(097230)은 MSRA 체결 마무리 단계에 있다. 지난달 미 해군 해상체계사령부(NAVSEA) 실사단이 부산 영도조선소를 방문해 생산 능력을 점검했다. HJ중공업은 국내 함정 방위산업체 1호로, 함정·군함 등 특수선 건조 경험이 있다. 11월쯤 MSRA 체결이 가능할 것으로 본다.
경남 진해에 있는 케이조선은 미 해군 시설과 가까워 MRO 거점 후보지로 거론된다. 과거 해군용 함정 건조 경험도 있다. 현재 케이조선 최대 주주인 연합자산관리(유암코)는 경영권을 포함한 지분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SK오션플랜트(100090)도 미 군함 MRO 사업 진출을 공식 선언했다. 함정 건조 방산 업체로 지정돼 해군·해경에 수십 척의 함정을 인도한 이력이 있다. SK오션플랜트의 최대 주주 SK에코플랜트는 경영권을 포함한 지분 매각을 추진하고 있으며, 우선협상대상자로 디오션 컨소시엄을 선정한 상태다.
한 조선업계 관계자는 "한·미 관세 협상이 난항을 겪으면서 마스가 프로젝트도 잠잠해졌으나 미국이 조선 산업을 재건하려면 한국 기업이 필요하다. 중형 조선사들도 향후 일감을 고려해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