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대기업과 공기업이 해외 지사나 법인에 파견돼 근무할 주재원을 찾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해외에서 근무하는 주재원은 한때 선망의 대상이었으나 결혼 시기가 늦어지고 워라밸(Work-life balance·일과 삶의 균형)을 중시하는 문화가 자리 잡으면서 지원자가 줄고 있다.
8일 복수의 재계 관계자는 "주재원 선발 경쟁률이 예전만큼 높지 않다. 주재원에 대한 관심이 점차 떨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기업의 수출을 지원하기 위해 설립된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코트라)도 해외로 가려는 직원이 줄었다고 한다. 코트라는 유럽·중국·북미·아프리카 등 전 세계 곳곳에 총 131개 해외 무역관을 두고 있다. 한 관계자는 "코트라는 해외가 현장인데 아예 안 나가겠다는 직원이 늘고 있다. 한국이 살기 좋아졌고, 맞벌이를 하는 기혼자는 혼자 나가야 하니 꺼리는 이유도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전 세계를 상대로 다양한 상품과 서비스를 중개하는 상사에서도 해외 근무를 꺼리는 직원이 늘고 있다. 한 대형 상사 직원은 "해외에서 근무하면 자녀 교육에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최근 결혼 시기가 늦어지다 보니 해외에 나갈 시기에 미취학 자녀가 있는 경우에는 해외 근무를 꺼리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맞벌이 가정이 늘어난 것도 주재원에 대한 관심이 낮아지는 이유다. 부부 중 한 명이 주재원이 된 후 가족이 함께 해외로 가면 소득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또 다른 상사 직원은 "배우자가 가사를 전담하거나 휴직이 자유로운 직업인 경우 주재원으로 많이 간다"고 말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맞벌이 부부 비율은 48.2%다. 주재원이 주로 되는 30대(61.5%)와 40대(59.2%) 맞벌이 비율은 60% 안팎이다.
제조업에서는 주재원 근무를 더 꺼리는 경향이 있다. 제조업 주재원은 주로 해외에 공장이나 사업장을 신설할 때 파견 나가 안정화 작업을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미국·헝가리에 공장을 짓는 단계에 투입됐던 한 배터리 업체 관계자는 "맨땅에 헤딩하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한국에서는 정시 출퇴근이 가능하지만, 해외에선 그렇지 못한 경우도 많다. 책임자급인 주재원은 현지 관리를 하면서 본사와도 소통해야 하기 때문이다.
주재원에게 지급되는 지원금이 줄어든 것도 요인이다. 과거에는 주거비, 자녀의 국제학교 비용을 전액 지원해 주는 경우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대부분 상한선을 두고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주재원 지원자가 줄고 있어 전체 공고를 내기보다는 평소 괜찮았던 인물을 추천하는 방법으로 주재원을 선발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