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이 사용하는 방탄 헬멧과 방탄복은 수십 년간 해외에 의존해 왔다. 2016년에는 일반 총알에도 완전 관통되는 불량 방탄복을 비리로 독점 공급권을 획득한 업체가 보급해 검찰 수사가 이뤄지기도 했다. 국내에선 방탄 소재에 대한 기술이 부족했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2020년 출범한 한국정밀소재산업은 방탄 소재를 만들면서 방탄복 시장 진출을 추진 중이다. 해외에는 이 소재를 수출 중이고, 국내에서는 군에 납품하기 위해 방탄복 제작 업체와 논의 중이다.
한국정밀소재산업은 슈퍼섬유로 불리는 아라미드(aramid)와 폴리에틸렌 등을 가공해 고성능 섬유 경량 복합재를 만든다. 복합재는 두 종류 이상의 소재를 조합해 강도는 높으면서 무게는 줄인 섬유를 말한다. 고성능 섬유 경량 복합재는 미국·유럽·중국이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데, 그간 한국은 중국에서 대부분 수입해왔다.
그동안 원재료(아라미드)와 방탄 제품을 만드는 업체는 있었지만, 그 둘을 잇는 소재 기업이 없었다. 코오롱인더(120110)스트리나 태광산업(003240)이 아라미드를 생산하지만 대부분 해외로 수출한다.
한국정밀소재산업이 아라미드와 탄소 섬유를 활용해 지난 2023년 개발을 끝낸 UD 방탄 원단은 섬유를 한 방향으로 정렬해 만든 첨단 소재다. 이 원단으로 제작된 방탄판은 가벼우면서도 기존 방탄 소재 대비 열과 충격에 강하다. 국내에서 전량 생산돼 맞춤형 주문과 신속한 납품이 가능한 게 장점이다.
한국군 보병이 사용하는 방탄복의 기준은 후면 변형(방탄복 안에서 발생하는 변형량) 44㎜ 이하·무게 3㎏ 이하다. 총알을 맞았을 때 방탄복의 후면이 44㎜ 이하로 튀어나와야 한다는 뜻이다. 한국정밀소재산업의 방탄 소재로 제작된 방탄복은 후면 변형과 무게가 규격보다 15% 낮게 측정됐다.
방탄 소재는 방탄복과 헬멧을 넘어 전차, 자주포, 헬기, 유·무인 전투기 등의 내장재에도 활용될 수 있다. 한국정밀소재산업은 한 무기 체계의 내장재와 국내외 군·경찰을 위한 방검·방탄복을 개발하고 있다. 또 UD 방탄 원단의 양산을 위한 생산 설비도 증축 중이다.
이진호 한국정밀소재산업 경영지원총괄 이사는 "공급망 안정과 기술 자립을 통해 성장 가능성을 확보했다"며 "미국, 유럽, 중국은 필수 전략 소재에 대한 국산화 법을 마련해 공급망을 관리하고 있다. 한국도 국내 공급망이 관리될 수 있도록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