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전선(戰線)에서 메일 한 통이 도착했다. 우크라이나 최대 드론 제조 업체인 TAF드론 최고경영자(CEO) 올렉산드르 야코벤코로부터 온 편지였다. 올해 35세 청년인 야코벤코 CEO는 러시아 침공에 맞서 대(對)러 드론전과 기술혁신을 주도하고 있다. 그는 인터뷰에서 "2022년 발발한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을 계기로 드론이 현대전의 주인공으로 떠올랐고, 몇 년씩 걸리던 기술 개선 주기가 몇 달로 단축되면서 뜻밖의 성과를 거두고 있다"며 "3년 사이 많은 것이 변했다"고 말했다. 전선 군인들의 의견이 반영된 '빠른 혁신' 은 골리앗을 골탕 먹이기 충분했다. 야코벤코 CEO는 "우린 이미 포탄과 항공기 화력에서부터 러시아를 이길 수 없다는 걸 잘 안다" 며 "하지만 드론은 이제 평등화의 수단이 됐고 400달러짜리 일인칭 드론(FPV)이 100만달러짜리 무기를 부수는 시대가 됐다"고 말했다.

드론의 혁신은 전장(戰場)에만 머물지 않는다. 인공지능(AI) 고도화를 기반으로 드론은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10%를 차지하는 물류 산업의 지형을 바꾸는 주역으로도 부상하고 있다. 중국 최대 음식 배달 업체 메이퇀은 2021년 이후 52만 건의 드론 배송을 실현했다. 선전의 고층 빌딩은 물론 베이징의 만리장성으로도 드론 음식 배달이 이뤄지고 있다.

에릭 브록 미국 상업용드론협회(CDA) 의장은 "드론은 방위·물류·농업·인프라·건설· 산업 안전 등 여러 분야에서 실용성을 인정받으며, 이들 산업의 빠른 성장을 견인하고 있다"고 했다. 미쓰비시연구소는 드론이 일으키는 산업 지형 대변혁을 '하늘 위의 산업혁명'이라고 명명했다. '이코노미조선'은 국내외 전문가 인터뷰를 통해 전쟁은 물론 일상생활과 산업 현장을 바꾸고 있는 드론 산업의 현황과 미래를 조명했다. 그랜드뷰리서치에 따르면, 2024년 731억달러(약 101조7187억원)에 달한 글로벌 드론 산업은 2030년 두 배가 넘는 1636억달러(약 227조6494억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구글이 2006년 세계 최고의 미래학자로 꼽았던 토머스 프레이 다빈치연구소 소장은 "2029년 소형 소포 배송 50%를 드론이 책임지고, 2030년 전 세계 하늘에 10억 대에 달하는 드론이 날고, 2033년 기존 배송 차량 50%가 드론으로 대체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1 중국 배달 서비스 회사 메이퇀의 드론이 중국 선전에서 음식을 실어나르고 있다. 메이퇀 2 9월 3일 전승절 80주년 행사에 공개된 중국 인민해방군 드론 전력. 신화연합 3 우크라이나 TAF드론이 자체 양산한 일인칭 드론(FPV). /사진 TAF드론

드론 확보 경쟁 불붙인 우크라이나 전쟁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소형 드론 사용 방식을 바꾼 것뿐 아니라 부품 공급망에 대한 인식을 근본적으로 바꿨다." 글로벌 드론 시장 분석 회사 드론인더스트리인사이츠 카이 바크비츠 CEO는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을 "최근 10년간 국방과 상업 드론 시장을 통틀어 가장 극적인 변화를 불러온 사건" 이라고 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8월 20일 대만이 중국 위협에 맞서 향후 2년간 미국산 드론을 5만 대 가까이 도입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일본도 방위성을 통해 2026 회계연도에 최대 2000억엔(약 1조8800억원)을 방어용 드론 대량 배치에 사용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일본 언론이 보도했다.

美·유럽도 드론 독자 공급망 확충 경쟁 가세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초기엔 중국산 드론이 맹활약했다. 중국 DJI가 만든 쿼드콥터 매빅3은 한때 가장 많이 전투에 투입된 상용 드론이었다. 하지만 중국이 자국산 상용 드론의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투입을 금지하면서 TAF드론은 한 달에 자폭 공격 가능한 FPV 8만 대를 자체 생산해 전선으로 보내고 있다.

전쟁이 방산으로서 드론의 중요성을 부각하면서 중국 의존도를 줄이기 위한 공급망 확충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강왕구 한국항공우주연구원 무인이동체사업단 단장은 "미국과 유럽연합(EU) 등 많은 나라가 드론 독자 공급망을 구축하기 시작했다"며 "대외 의존도가 높은 한국도 고민이 깊어졌다"고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6월 '미국 드론의 지배력 강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동시에 DJI 같은 중국산 드론과 부품 연방 정부 조달 제한을 의무화했다.

EU도 미·중 패권에 밀린 드론 산업 생태계 복원에 나섰다. 프랑스 드론 기업 패럿은 한때 DJI와 경쟁할 정도였지만, DJI에 세계 1위 자리를 내어준 뒤 제품 출시도 늦어지면서 글로벌 순위가 4위(2024년, 보스턴컨설팅 조사)로 밀렸다. 하지만 유럽의 방위산업 육성이 부각되면서 현지 정찰용 드론 개발 업체퀀텀시스템과 테케버는 올들어 벤처투자를 유치해 각각 10억유로(약 1조6272억원)가 넘는 기업 가치를 인정받았다. 실리콘밸리 출신들이 세운 유럽 스타트업 헬싱(Helsing)과 델리언 얼라이언스 인더스트리(Delian Aliance Industries·델리언)는 해외 시장 공략에 속도를 내고 있다. 델리언은 드론과 무인 선박 기술에 대한 강점을 내세워 한국 진출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드론 산업 가치 사슬 지배한 중국

드론인더스트리인사이츠에 따르면, 중국은 전 세계 상업 드론 시장의 70% 이상을 장악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개인용 드론 시장 70%를 점유한 DJI 덕분이다. 기술력에서도 중국은 세계를 선도하고 있다. 영국 지식재산권(IP) 전문 로펌인 매티스 앤드 스콰이어에 따르면, 2024년 중국이 출원한 드론 기술 특허는 전년보다 73% 급증한 6217건으로, 드론 특허 출원 건수(7890건)의 79%를 차지했다. 국산화율도 90%가 넘는다.

중국 드론은 9월 3일 베이징 톈안먼 광장에서 열린 전승절 80주년 기념 열병식에서도 존재감을 입증했다. 중국은 AI를 탑재하고 유인 전투기와 함께 연합작전을 펼치는 스텔스 드론인 이른바 윙맨드론과 제공권 드론, 함재용 무인 헬기를 선보였다.

중국은 앞서 2023년 12월 중앙경제공작회의에서 저공경제(低空經濟)를 전략적 신흥 산업으로 포함시켰다. 저공경제는 1000m 이하 저고도에서 전기 수직이착륙(eVTOL), 민간 드론 사업을 중심으로 펼치는 경제활동 전반을 말한다.

중국 교통운수부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에서 드론 배송 건수(음식 배달 제외)가 270만 건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 궈신증권은 지난해 중국 드론 등록 대수가 215만8000대로, 처음으로 200만 대를 넘어섰다고 밝혔다. 중국 민용항공국은 2025년 1조5000억위안(약 293조 1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는 중국의 저공경제 규모가 2035년 3조5000억위안(약 683조 9000억원)까지 급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제조 강국 한국 드론 산업, 영세성 극복 과제

국토교통부 산하 항공안전기술원이 펴낸 2024년 드론 산업 실태 보고서를 보면, 국내 드론 관련 기업은 6227개 사이고 이들의 민간 분야 연간 매출은 1조993억원으로 나타났다. 한 개 업체가 1년에 1억6000만원을 벌어들이는 셈이다.

이준곤 건국대 방위사업학과 교수는 "드론 산업은 민간에서 주도하기 어렵고 먼저 정부나 군, 공공에서 수요를 창출해야 하지만 국내에선 정부가 이렇다 할 큰 사업을 지속적으로 창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특히 국방 분야에서는 고사양을 과도하게 요구하는 일이 많아 기업의 사업성을 떨어뜨리고 적절한 장비 확보 시점을 놓치는 일도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혁 한국방위산업진흥회 방산정책연구센터장은 "튀르키예가 20년 전 국산 무인기 송골매 기술을 배우러 올 정도로 국내 기술력은 앞서 있었다"며 "튀르키예가 실패도 경험 삼아 지금의 드론 강국으로 빠르게 성장한 것을 잘 봐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미국에서 중국산 드론 퇴출이 한국에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기대도 있다. 드론 부품 기업인 볼로랜드 안성호 대표는 "미국 농업용 드론 업체 힐리오와 농업 및 국방 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