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번기(농촌에서 농사로 바쁜 시기) 일손 부족을 해소하기 위해 도입된 외국인 계절 근로자 제도가 올해로 시행 9년 차를 맞았다. 올해에만 약 5만7000명의 외국인이 계절 근로자로 한국에 들어오는 등 수요가 급격히 늘고 있지만, 불법 브로커 개입·임금 체불·사기·불법 체류자 전락 등 문제가 끊이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농어업 현장 이해도가 높은 부처가 제도 운영을 전담해 책임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또 불법 브로커 개입을 원천 차단할 수 있도록 각 지방자치단체의 전담 인력을 확충하고, 외국인 계절 근로자들의 숙소 등 생활 여건도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외국인 계절 근로자가 없으면 한국 농촌이 마비되는 만큼 외국인 근로자와 더불어 사는 시대를 준비할 때가 됐다는 것이다.
임미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외국인 계절 근로자 제도의 가장 큰 문제는 부처 간 업무가 분절돼 책임을 묻기 어려운 구조라는 점"이라며 "제도 운영의 명확한 책임 부처를 정해야 하는데, 그 주체는 현장을 잘 아는 농림축산식품부와 해수부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은 외국인 계절 근로자 제도를 비자 발급 등 입출국 관리를 하는 법무부가 담당한다.
지난 7월 임 의원이 대표 발의한 '출입국관리법 개정안'과 '외국인 계절 근로자 제도 개선법'은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출입국관리법 개정안은 ▲계절 근로 제도의 법적 근거 마련 ▲계절 근로자 전문 기관 지정 ▲브로커 처벌 조항 신설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외국인 계절 근로자 제도 개선법에는 ▲외국인 계절 근로자 정의 신설 ▲표준 근로 계약서 도입 ▲임금 체불, 질병·사망 등을 대비한 보험 가입 의무화 등이 포함됐다. 하지만 주무 부처 등에 대한 내용은 들어있지 않다.
임 의원은 "제도 운영의 핵심인 비자 발급은 법무부가 하지만 현장에서 발생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책임지지 않고, 농식품부와 해수부는 현장 실태에 대한 제대로 된 자료도 갖고 있지 않다"며 "지자체는 문제가 불거질 경우 계절 근로자 배정에 불이익을 받을까 봐 문제를 덮고 넘어가기에 급급하다"고 했다. 국가인권위원회 역시 지난해 7월 국무총리에게 외국인 계절 근로자 제도 운영의 주무 중앙행정기관을 조정해야 한다고 권고한 바 있다.
외국인 계절 근로자 제도가 불법 체류자 양산 창구로 변질되는 것을 막기 위해선 각 지자체의 전담 인력을 확충할 필요가 있다. 경남 거창군은 성공 사례로 꼽힌다. 지난 2022년부터 2023년 초까지 거창군으로 들어온 외국인 계절 근로자 중 20여 명이 도망쳤지만, 이후에는 연간 이탈률이 0%대까지 내려왔다.
구인모 거창군수는 "2022년 15명의 무단 이탈 사건을 조사한 결과 외국인 계절 근로자의 월급 50% 이상을 떼어가는 불법 브로커 때문이라는 판단이 섰다. 2023년 1월 곧바로 조직을 개편해 전담팀을 편성했다"고 말했다.
현재 거창군은 신설된 '전략담당관' 조직 산하 '농촌일손담당'에서 외국인 계절 근로자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공무원 3명, 기간제 근로자, 거창군과 업무협약(MOU)을 맺고 있는 필리핀 푸라시에서 파견된 공무원 등을 합해 총 11명이 이곳에 소속돼 있다. 전담 인력이 1~2명에 불과한 다른 지자체와 비교하면 대규모다. 농촌일손담당은 비자 발급·보험 가입·기숙사 관리·통역 등 업무를 세분화해 불법 브로커의 개입 여지를 원천 차단했다.
구 군수는 "브로커는 한국뿐만 아니라 해외에도 있다. 양쪽 지자체장의 (불법 브로커 차단) 의지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했다. 거창군은 필리핀 푸라시와 불법 브로커를 차단한다는 조건을 넣어 MOU를 체결했다. 임 의원 역시 "브로커 개입 여지를 없앨 수 있도록 우리나라 지자체와 외국 지자체 간 MOU 협약 내용을 고도화하고 역량을 키워야 한다"고 했다.
외국인 계절 근로자도 한국 최저 시급(시간당 1만30원)을 적용받다 보니 본국 대비 과도한 임금을 받고 있고, 농촌 부담이 크다는 목소리에 대해 임 의원은 사회 안전망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올해 초 미국에서 우리나라 태평염전에서 생산한 소금 수입을 금지했는데, 소위 '염전 노예'라고 알려진 강제 노동 사건이 계기가 됐다. 이제는 농어업 분야도 노동 착취가 아닌 제대로 된 노동을 통해 생산해야 판매와 수출을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농민들의 부담을 덜기 위해 농촌 외국인 근로자 숙소 제공 등 여러 지원이 정부와 지자체를 통해 이뤄지고 있다. 농업 분야도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대한변협 외국인 계절 이주 근로자법 제도 개선 태스크포스(TF) 위원으로 활동한 이소아 변호사도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해야 한다는) 일부 농민들의 시각은 오히려 농어촌·농어민·농어업을 고립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고, 농어촌은 인권 침해를 해도 되는 곳이라는 편견을 고착화시킬 수 있다"며 "(외국인 최저임금 적용으로 인한 농장주의 경제적 부담은) 농민 수당과 농어업 안전 재해 보험 등 다른 사회 보장 체계를 정비해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외국인 계절 근로자의 생활 여건 개선도 과제 중 하나다. 정연철 삼척시의원은 "삼척시만 봐도 계절 근로자 기숙사는 단 한 곳도 없다. 외국인 기숙사 건립은 외국인 근로자의 정주 여건 개선에 큰 역할을 할 것이고, 고용주의 근로자 인력 관리 효율성과 산업의 생산력 증대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제 외국인 근로자를 단순히 일정 기간 체류하며 노동력을 제공하는 외국의 사람이 아닌,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서 바라보는 관점이 필요한 시기"라고 했다. 구 군수도 "외국인 계절 근로자를 동료와 이웃으로 생각하는 인식 전환 교육을 지속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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