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출신의 불법 체류자 솔로몬씨는 지난 2014년부터 경기 용인시의 한 공장에서 일하다가 지난해 11월 퇴직했다. 그는 퇴직금과 연차 수당 등 약 5000만원을 받지 못했고 고용노동부 경기지청에 임금 체불 진정을 냈다.
지난 4월 진정인 조사를 마치고 나오던 솔로몬씨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출입국관리법 위반 혐의로 체포됐다. 경찰은 누가 신고했는지 밝히지 않았지만, 그는 회사 관계자로부터 "노동청에 출석하면 경찰에 신고하겠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했다. 그는 전 직장 관계자가 경찰에 신고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솔로몬씨는 시민단체의 도움을 받아 3개월간 화성 외국인보호소에서 생활한 뒤 보증금 600만원을 내고 보호 일시 해제를 받아 용인 쉼터에서 생활하고 있다. 그는 "잡혀간 사람 대부분은 퇴직금을 포기하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 외부와 격리된 시설이기 때문에 불법 체류자 신분에서 퇴직금을 받기 위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
고기복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 대표는 "임금 체불 조사를 받으러 갔다가 체포될 거라곤 상상을 못했다. 신고를 악용하는 사업주들이 많다"고 말했다.
불법 체류자를 직원으로 고용한 뒤 임금·퇴직금·수당 등을 주지 않기 위해 신고하는 사례가 늘자 정부가 대책 마련에 나섰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2일 국무회의에서 외국인 근로자를 대상으로 한 임금 체불에 대해 "이 사람들이 강제 출국당하면 영영 떼먹을 수 있으니까 일부러 임금 체불을 한다고 한다. (불법 체류자로) 걸렸다고 무조건 내쫓아서는 안 된다"라고 말했다.
이어 "사업주들이 그걸 노리고 신고한다고 하더라. 임금을 떼먹고 신고해서 강제 출국시키는 게 나라 망신을 시키는 것"이라며 "임금을 떼먹힌 외국인 노동자들은 출국을 보류해 주고 돈을 받을 때까지 기회를 주는 것도 검토해야 할 것 같다"라고 했다.
고용노동부는 퇴직금 2975만9234원을 퇴직 이후 14일 이내 미지급했다며 7월 31일까지 지급하라고 솔로몬씨 전 회사에 시정 지시를 내렸다. 퇴직금을 아직 받지 못한 솔로몬씨는 용인의 외국인 근로자 쉼터에서 생활하면서 시민단체와 함께 전 회사를 상대로 민사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이 회사에는 솔로몬씨 외에 다른 불법 체류자도 고용한 것으로 전해진다. 솔로몬씨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퇴직금을 포기하고 회사를 떠나거나 고향으로 돌아갔다.
고 대표는 "많은 미등록 근로자들이 한시적인 보호해제 조치를 받고도 재판이 장기화 되면서 임금을 못 받고 출국 당하는 경우가 많다"며 "임금체불로 보호해제를 받은 외국인은 재판 때까지 거주와 취업을 허용해 생계를 유지하면서 재판을 보장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법무부는 지난 3일 출입국관리법 84조를 개정해 외국인 근로자를 '통보 의무 면제' 대상에 포함하겠다고 밝혔다. 현행 출입국관리법 84조는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공무원이 직무 수행 중 외국인의 불법 체류 사실을 알게 된 경우 반드시 지방출입국·외국인 관서의 장에게 통보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런 규정 탓에 외국인 근로자들이 임금 체불 피해를 당했더라도 관계 기관에 신고하기를 주저해 왔다고 정부는 보고 있다. 신고 과정에서 불법 체류 사실이 드러나 강제 출국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용노동부도 4일부터 외국인 다수 고용 사업장 중 노무 관리 취약 사업장을 선별해 노동관계법령 위반 여부를 점검하고 임금 체불 여부를 중점 점검할 방침이다. 특히 임금을 못 받은 외국인 근로자가 강제 출국되는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신속히 수사를 진행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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