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경기 광명시 옥길동의 광명~서울고속도로 건설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의 30대 근로자 A씨가 심정지 상태로 발견돼 병원으로 이송됐다. 그는 지하 18m 지점에 있는 양수기에서 작업을 하던 중 감전으로 추정되는 사고를 당했다. 경찰은 한국어에 서툰 A씨가 업무 지시나 안전 수칙 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현장에 투입됐을 가능성을 조사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 정부가 산업재해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기로 한 가운데 외국인 근로자들이 안전 사고 위험에 노출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건설·제조업 현장에서 외국인의 비율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지만, 이들의 한국어 의사소통 능력이 부족한 탓에 필수적인 안전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2월 서울~세종고속도로 9공구 교량 상판 붕괴 사고현장에서 유관기관 관계자들이 합동감식을 하고 있다./뉴스1

이민정책연구원이 올해 발간한 '외국인 근로자 업무상의 재해 현황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산업 현장에서 사고로 숨진 외국인 근로자의 수는 지난 2017년 이후 2023년까지 7년 연속 연간 100명을 넘어섰다. 산재로 인한 부상자·질환자도 2017년 6186명에서 2023년 8677명으로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업종별로 보면 지난 2023년 기준 외국인 근로자의 업무상 사고 중 78.1%는 건설업과 광·제조업에서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건설업이 전체 사고의 39.8%를 차지했고, 광·제조업이 38.3%로 뒤를 이었다. 연구원은 "전체 외국인 근로자 중 건설업에 종사하는 비율은 12%에 불과하다"며 "이를 감안하면 다른 업종에 비해 상당히 많은 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래픽=손민균
그래픽=손민균

농어업 현장에서도 외국인 근로자의 사고가 자주 발생한다. 지난 9일 전남 곡성의 한 과수원에서 베트남 국적의 근로자가 지게차에 깔려 숨지는 사고가 발생한 데 이어 10일에는 전남 고흥의 새우 양식장에서 베트남과 태국 출신 근로자가 감전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산업 현장에서 사고를 당한 외국인 대다수는 비전문 취업 비자(E-9 비자)로 입국한 근로자들이다. 유학 비자(D-2 비자)나 일반 연수 비자(D-4)를 가진 외국인 유학생들도 국내 취업이 가능하지만, 이들은 일정 수준 이상의 한국어 능력을 갖춰야 하고 허용되는 일자리도 식당이나 편의점 등 재해 위험이 낮은 단순 아르바이트에 한정돼 있다. 반면 E-9 비자로 들어오는 근로자들은 주로 고위험 사업장에 취업하고 요구되는 한국어 능력 기준도 낮은 편이다.

D-2 비자인 외국인 유학생의 경우 주중 25시간 이상을 일하기 위해선 한국어 능력시험(TOPIK·토픽) 3급 이상의 성적을 확보해야 한다. 반면 E-9 비자는 상대평가로 치러지는 고용 허가제 한국어 능력시험(EPS-TOPIK)에 합격하면 발급 요건을 충족하고 입국 전 한국어 교육 38시간만 이수하면 된다.

지난달 31일 부산 사하구의 한 공장에서 외국인 근로자가 프레스 기계를 점검하다 팔이 절단된 사고가 발생했다. 사진은 부산사하경찰서 소속 경찰이 사고 현장을 확인하는 모습. /부산사하경찰서 제공

외국인 근로자들이 안전 관리의 사각지대에 있다는 지적이 늘면서 최근 국내 기업들은 이들을 대상으로 한 안전 교육과 사고 예방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HD현대중공업(329180)은 2018년부터 운영 중인 국내 최대 규모의 통합안전교육센터 안에 외국인을 위한 가상현실(VR) 안전 체험 시설을 만들고 외국어로 작성된 교육 자료와 콘텐츠도 제작해 활용 중이다.

그러나 자본과 인력 구조가 열악한 중소기업은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안전 교육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중소기업은 구인난이 심해 외국인 근로자에 의존도가 더 높다. 이 때문에 산업계에서는 중소기업이 외국인 근로자 대상 안전 교육을 강화할 수 있게 예산 지원을 늘리고 관리·감독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산업계 관계자는 "건설 근로자 중 외국인 비율이 60%가 넘는 싱가포르는 근로자가 입국 후 별도의 안전 교육 시험을 통과해야 하고, 정기적인 안전 교육을 이수해야 체류 자격을 유지할 수 있다"며 "선진국들의 관리 사례를 면밀히 파악해 국내 산업 현장에서도 적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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