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데 가겠다고 떠난 외국인 근로자가 3개월 동안 새 직장을 못 구했다면서 다시 연락이 오더라고요. 한참 뒤에 보니 다른 업체에서 불법 체류자 신분으로 일하던데, 그렇게 불법 체류자가 되는 경우가 너무 많아요."
청주시 상당구에서 15년간 한식집을 운영해 온 안모(65)씨는 "(외국인 근로자가) 3개월 동안 새 직장을 못 구하면 출국시켜야 하는데, 왜 출국을 안 시키고 불법 체류자가 되도록 놔두는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외국인고용법)과 출입국관리법에 따르면 외국인 근로자는 기존 근로 계약이 종료된 날부터 1개월 이내에 다른 사업장으로 변경을 신청하고, 신청 후 3개월 이내에 근무처 변경 허가를 받지 못하면 출국해야 한다. 고용을 전제로 비자를 받아 한국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이 본국으로 돌아가는지 책임지고 확인하는 곳이 없기 때문에 한국에 계속 남아 불법 체류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 외국 인력의 사업장 변경 신청부터 신규 사업장 알선까지 담당하는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3개월 내에 구직을 못한 인원은 노동부 소관이지만, 3개월이 지나 불법 체류자가 된 인력에 대한 관리는 법무부 담당"이라고 말했다.
고용주들은 정부 부처 간 정보 공유나 협조가 이뤄지지 않는 게 문제라고 말한다. 지역 고용센터에 문제 제기를 했다는 한 금속업체 대표는 "노동부는 근로기준법 위반 조사 과정에서 불법 체류자인 게 밝혀져도 소관이 아니라 추방할 수 없다고 하고, 출입국 사무소는 해당 외국인의 주소를 모르는데 어떻게 강제로 출국시키냐고 하더라"라고 말했다.
사업장 변경 신청 후 3개월까지는 노동부, 3개월이 지나면 법무부 소관이 되는데 노동부와 법무부 간 정보 공유가 원활하지 않다 보니 부처 소관이 바뀌는 과정에서 불법 체류자가 양산되는 것이다.
법무부는 "출국 대상자로 분류돼 전산 통보된 외국인 근로자에게 출석해서 의견 진술할 것을 안내한다. 사실조사 후 출국 대상자로 확인되면 체류 기간 조정 후 해당 기한 내 출국하도록 안내하고 있다"고 말했다. 외국인 근로자가 잠적하면 사실상 찾을 방법이 없는 것이다.
외국인 근로자는 비전문취업(E-9) 비자로 한국에 많이 들어오는데 사업장 변경 신청이 잦다. 지난해 사업장 변경을 신청한 외국인은 6만6533명으로 E-9 비자로 입국한 전체 인력 7만8645명의 84.5%에 달했다. E-9 비자로 들어와서 3개월간 구직에 실패한 외국인은 지난해 2805명이었다. 이들이 자발적으로 출국하지 않았다면 불법 체류자로 한국에 남아 있는 것이다.
관리 사각지대로 들어온 불법 체류자들은 국내 다른 기업 취업을 시도한다. 부산의 한 제조업체에서 외국인력을 담당하는 이모(67)씨는 "출국하는 척하다가 숨어서 불법 취업을 하는데, 단속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고 했다.
외국인고용법은 사업주에게 출국 만기 보험에 가입하도록 하고 있다. 외국인 근로자의 퇴직금을 보장하고 불법 체류자 전환을 방지하기 위한 것인데, 보험 지급은 출국을 전제로 이뤄진다. 노동부 관계자는 "티켓 확인을 따로 하지 않지만, 출국을 전제로 보험금을 지급한다"고 말했다.
현장에서는 암묵적으로 단속 정보를 흘려준다는 얘기도 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제조업체 대표는 "지자체에서 '출입국 당국이 1~2주 안에 단속 나간다'고 알려온다. 그러면 보름 정도 불법 체류자를 빼서 일을 안 시키는 식으로 피한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숙박업체를 운영하는 김모(60)씨는 "강력 사건이 터져서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 한 불법 체류자 단속은 적당히 하는 분위기다. 담당자도 이들이 없으면 안 돌아간다는 걸 알기 때문"이라고 했다.
김중곤 계명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불법 체류자는 단속 인력이 현저하게 부족한 게 문제다. 사실상 방치 상태인데 제대로 단속하려면 이민청 설치를 비롯해서 정말 큰 제도 개편이 있어야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불법 체류 유학생은 정부로부터 평가를 잘 받아야 하는 대학이 나서지만, 산업 현장은 이런 유인이 없어 사각지대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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