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장성군에서 두릅 농장을 운영하는 김창신 ㈜시나브로 대표는 지난 5월에 고용한 세 명의 태국인 계절 근로자 중 두 명이 도망치면서 올해 계획한 사업이 모두 어그러지게 됐다. 계절 근로자가 도망치면서 약 800만원의 피해액이 발생했고, 올해 무산된 사업까지 고려하면 약 1500만원의 손해가 예상된다고 한다.
계절 근로자 여성 한 명은 한국에 온 지 한 달도 채 안 돼 미리 한국에 와 있던 남편의 도움을 받아 도망쳤다. 다른 남성 한 명은 장성군에 함께 들어온 다른 계절 근로자 13명과 야반도주했다. 김 대표는 "이들은 처음부터 도망칠 생각으로 계절 근로자 비자를 받아 입국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미국이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지역의 강제 노동 실태 조사를 강화하면서 부실한 외국인력 관리가 한국 제품·농수산 식품의 수출을 위협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가운데, 외국인 근로자들이 불법의 유혹에 쉽게 노출되고 있다.
미국 관세·국경보호국(CBP·Customs and Border Protection)은 ▲취약성 악용 ▲사기 ▲이동 제한 ▲신분증 압수 ▲가혹한 생활 및 근로 조건 ▲협박 및 위협 ▲신체적 폭력 ▲채무 노역 ▲임금 지급 거부 ▲과도한 초과 근무 ▲격리 등 국제노동기구가 규정한 11개 강제 노동 지표를 위반한 사실을 확인하면 해당 제품 수입을 금지할 수 있다. 외국인을 상대로 한 이런 강제 노동은 불법으로 일하는 근로자에게서 자주 발생한다.
외국인 계절 근로자(E-8 비자) 제도는 일손이 부족한 농번기에 농가에 큰 도움이 되지만, 불법 체류자를 양산하는 창구 역할도 한다. 계약 기간이 짧고 임금도 제조업보다 낮다 보니 일단 계절 근로자로 입국해 다른 일자리를 찾는 것이다. 계절 근로자는 입국 과정에서 브로커(중개인)에게 빚을 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를 빨리 갚아야 한다는 점도 외국인들이 불법 체류의 길을 선택하는 원인 중 하나다. 통상 브로커에게 빌리는 돈은 연간 수십%의 이자가 붙는다.
제조업에서 일하는 비전문 인력 외국인(E-9 비자)은 4년 10개월간 체류가 가능하다. 6개월간 본국에 돌아갔다 오면 한 번 더 연장할 수 있어 최대 9년 8개월간 한국에서 일할 수 있다. 반면 계절 근로자는 체류 기간을 연장할 수 없다. 돈이 필요한 외국인 입장에선 어렵게 한국에 들어온 만큼, 불법 체류를 해서라도 돈을 더 벌어야 하는 상황이다.
계절 근로자는 임금이 상대적으로 낮고 근무 시간도 들쑥날쑥해 불법 체류의 유혹에 빠지게 된다. 전국 외국인 계절 근로자 대부분은 주 35시간 근무에 최저 시급(올해 기준 1만30원)을 적용해 월 140만~150만원을 받고 있다. 제조업에서 근무하는 외국인 근로자도 최저 시급을 받지만, 근무 시간이 길고 주말 특근 등으로 추가 수당을 챙길 수 있어 월 300만원 안팎을 받는 경우가 많다.
전남의 한 외국인 종합지원센터 관계자는 "농가는 (날씨 등 현장 상황에 따라) 주 5일 일할 때도 있고 주 6일 일할 때도 있고 쉬는 날과 일하는 날이 정확히 구분되지 않는다. 일이 없을 땐 숙소에서 쉬어야 하는데, 빨리 돈을 벌고 싶은 외국인들은 불만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불법 체류자 단속에 걸려도 처벌은 미미하다. 불법 체류 기간에 따라 최대 3000만원까지 범칙금이 부과되는데, 법무부가 비정기적으로 운영하는 '특별 자진 출국 기간'에 자진 출국하면 범칙금을 면제받을 수 있다. 김창신 대표는 "농촌엔 불법 체류자가 할 수 있는 일이 굉장히 많기 때문에 이탈의 유혹이 크다"고 말했다.
외국인 계절 근로자는 입국은 물론 배정된 농촌에서 도망칠 때도 브로커의 도움을 받는 경우가 많다. 김용국 용인시외국인복지센터장은 "계절 근로자로 몇 개월 정도만 일해선 브로커 비용을 갚을 수가 없다 보니 근무지를 이탈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외국인 계절 근로자 제도가 불법 체류 창구로 악용되는 사례가 늘면서 애꿎은 농가만 피해를 보고 있다. 장성군의 경우 태국인 집단 이탈 조사를 나온 주한태국대사관 관계자로부터 '경찰에 피해 사실을 신고하고 고소하라'는 안내만 받았다고 한다.
김 대표는 "외국인 계절 근로자는 고용주의 주소 등을 모두 알고 있기 때문에 보복이 우려돼 신고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다시 일손을 구하려면 시간과 비용을 또 들여야 해 피해가 큰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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