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양식은 계절 근로자 등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이 참여하고 있고, 비공식 공급망(불법 양식장)이 많은 산업이라 미국 관세·국경보호청(CBP·Customs and Border Protection·CBP)이 가장 취약하게 볼 수 있는 부분입니다."

고기복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 대표는 지난 11일 경기도 용인시 사무실에서 만나 '제2의 태평염전'이 될 가능성이 높은 산업군을 묻는 말에 이같이 답했다. 그는 "김 수출액이 1조원을 넘었고 미국에도 수출이 많이 되는 품목"이라며 "CBP는 한번 제재를 내리면 그 주변 지역이나 산업을 더 조사해 또 제재를 내리는 경우가 많은데, 정부나 지자체가 이를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기밀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고기복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 대표가 지난 11일 경기도 용인시 사무실에서 외국인 근로자의 인권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박성우 기자

미 국토안보부 산하에 있는 CBP는 관세법에 따라 제품의 양식(생산)→가공→운송 등 전 과정에서 강제 노동이 있었는지 확인하고 강제 노동 혐의가 있으면 인도 보류 명령(WRO·Withhold Release Order)을 내릴 수 있다. WRO가 발동되면 해당 제품은 미국 도착 즉시 압류된다. 지난 4월엔 태평염전 소금이 강제 노동으로 생산됐다며 수입을 금지했다.

고 대표는 김 양식업이 CBP의 타깃이 될 수 있는 근거 중 하나로 비공인 공급망(무허가 불법 양식장)을 언급했다. 그는 "김 양식은 정부에 신청해 허가를 받은 구역에서만 작업할 수 있는데 우리나라 김 양식의 절반은 무허가 양식장"이라며 "과잉 생산으로 김 값이 하락하면서 어민도 피해를 보는 상황이지만, 미국이 조사 중인 불법 조업과도 관련이 있다"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4월 '미국 해산물 경쟁력 강화' 행정명령에 서명하면서 주요 해산물 수산국의 외국인 강제 노동 무역 관행을 비롯해 불법·비보고·비규제(IUU) 어업 활동을 조사하라고 지시했다. 당시 서명식에 참석한 미국 수산업자들은 "중국·일본·한국·대만이 미국 수산물 시장에 덤핑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올해 1분기 김 수출액은 2억8100만달러(약 4020억원)로 전년 동기 대비 21.1% 늘었다. 이 중 미국 수출액은 5790만달러로 비율이 가장 컸다. 올해 1월 전남 지역 김 양식장 위성사진을 분석한 결과 무허가 양식장 비율은 40%에 달했다. 무허가 양식장에는 외국인 계절 근로자나 불법 체류자 등이 근무하고 있다. 다음은 고 대표와의 일문일답.

─제2의 태평염전이 나올까.

"미국 CBP 제재는 반복되는 경우가 많다. 현재 유효한 WRO 중 70%가 신장 지역 등 중국이다. (CBP 제재를 받은) 말레이시아도 고무장갑으로 시작해 팜유로 품목이 확장됐다. CBP가 태평염전을 제재했다는 것은 그만큼 한국을 관찰하고 있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왜 김 양식인가.

"산업의 규모와 미국과의 수출입 관계, 외국인 근로자 투입, 비공식 공급망(무허가 불법 양식장)의 존재 등이 문제가 될 수 있다. 김 양식업에서 일하는 계절 근로자의 열악한 근무 환경 등이 언론에 많이 보도됐다. 특히 무허가 불법 양식장은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조사를 지시한 부분이다. CBP가 충분히 문제 제기를 할 수 있다."

그래픽=정서희

─어떤 여파가 있을까.

"수출 금지라는 게 굉장히 무서운 얘기다. 만약 특정 지역 김 제품에 대한 수출이 금지됐을 때, 이를 받아 수출하는 대기업의 수출도 금지될 수 있다. 이는 주가나 명성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한번 케이스(사례)가 잡히면 다른 농수산물이나 산업에도 확장될 수 있다."

─미국이 지켜보고 있다는 증거는.

"올해 초 미 국무부가 인신매매 보고서 작성을 위해 인권 단체를 대상으로 조사를 했다. CBP는 인신매매 관련 데이터를 수집하고 기초 조사를 한다. 최근 제보 사이트를 신설하는 등 인권 단체의 제보 채널을 강화하고 있다. 작년 인신매매 보고서에도 브로커에 당한 계절 근로자 사례가 담겨있다. 미국이 여러 경로로 정보를 모니터링하고 있다는 의미다."

─또 위험한 산업군이 있나.

"최근 CBP가 중국 어선 젠파7호를 제재했다. 원양어선에는 인도네시아 등 외국인 선원이 많이 근무하고 참치가 (한국의 수산 식품) 수출액 2위다. 한국의 조선업은 세계 최고지만 원양어선은 굉장히 노후화돼 선원들의 생활 환경이 열악하다. 우리 쪽에 접수된 사례를 보면 배에서 내린 인도네시아 선원에 대해 현상금을 거는 등 사적 제재를 가한 경우가 있었다.

또 원양어선은 선장, 간부에게 기본 급여 외에 어획량에 따라 성과급을 주는 보합제 급여 체계를 갖고 있다. 보합제는 선주와 선원이 어획물 판매 이익을 일정한 비율로 분배하기로 하는 일종의 성과급 약정이다. 하지만 보합제가 한국인 선원에게만 돌아가고, 외국인 선원은 대상에서 제외되는 게 태반이다. 이주 선원이 장시간 노동하는 대가가 선장 등 한국인 선원에게만 돌아가는 불합리한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다."

─계절 근로자 브로커 문제 해결 방안은.

"고용주와 지자체 공무원들이 인권 의식을 높여야 한다. 또 인력과 예산 보강도 필요하다. 다른 업무를 맡고 있는 한 명이 (외국인 근로자) 수백, 수천 명을 관리하니 일이 제대로 될 수 없다. 또 여러 국가에서 인력을 받기보다 영어가 가능하거나 송출 비용이 저렴한 국가를 지정하고 지자체가 아닌 국가가 계약의 주체가 돼야 한다. 관리 권한만 지자체에 넘기면 된다. 브로커가 개입할 수 있는 틈을 아예 만들지 않는 것이다. 계절 근로자가 근무를 마친 뒤 피해가 있었는지를 체크할 수 있는 국가 통계를 만들 필요가 있다."

─왜 브로커가 생기나.

"강원도 양구 사례에서 보면 피해자는 필리핀 근로자 91명이다. 피해 금액이 최소 20억원 정도가 된다. 수수료·항공료·연장비·교육비 등 뜯어 가는 것도 많다. 초기 비용이 없는 사람에게는 몇 백만원을 대출해주고 연 30% 가까운 이자를 챙긴다. 브로커들이 돈을 벌 수밖에 없다.

브로커가 잡히면 벌금이 3000만원 정도인데, 20억원 수익에 비하면 너무 작다. 한국은 구속보다는 벌금으로 판결 나는 경우가 많은데, 벌금이 아니라 실형을 내리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정부에 건의할 게 있나.

"정부의 100대 공약에서 외국인 근로자 정책이 없어 아쉽다. 외국인 근로자가 없으면 우리 산업이 돌아가기 어려울 정도로 필수 요소가 됐다. 최근 정부 측에 외국인 근로자의 자유로운 이직을 보장하는 정책 제안을 했다.

외국 인력 문제가 정치·외교의 놀이터가 돼선 안 된다. 정부가 외교를 위해 여러 개발도상국에 선심성으로 인력 쿼터(제한)를 늘려주고 있다. 지역에서 계절 근로자 등 이주 노동자들이 지속적으로 사건·사고에 휘말리는데 해당 지역 국회의원들은 계절 근로자 쿼터를 늘렸다는 것을 치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이주노동자 정책은 노동 문제로 풀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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