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토안보부 산하 관세·국경보호국(CBP·Customs and Border Protection)은 지난 5월 28일 중국의 오징어잡이 어선 젠파(Zhen Fa) 7호에 대해 폭행·임금 체불·신분증 압류 등 강제 노동이 확인됐다며 미국 수입을 금지하는 인도 보류 명령(WRO·Withhold Release Order)을 내렸다. WRO가 발동되면 해당 제품은 미국 항구에 도착 시 바로 압류된다.
젠파 7호에 탑승한 인도네시아 출신의 한 선원은 지난 2020년 우루과이 수도 몬테비데오의 한 병원에서 숨을 거뒀는데, 3개월 가까운 바다 생활 동안 다른 선원들에게 구타를 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몸은 멍투성이었고 손발은 영양실조로 인한 각기병으로 퉁퉁 부었다. 목에는 밧줄로 묶은 흔적도 발견됐다.
CBP가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지역의 강제 노동 실태 조사를 강화하면서 외국인 근로자가 생산에 참여한 한국 기업 제품이나 농수산 식품의 수출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CBP는 ▲사기 ▲이동 제한 ▲신분증 압수 ▲신체적 폭력 등 국제노동기구(ILO·International Labour Organization)가 규정한 11개 강제 노동 지표를 위반한 사실을 적발하면 해당 제품 수입을 금지할 수 있다. CBP는 지난 4월 전남 신안 태평염전 소금의 수입을 이런 이유로 금지했다.
CBP는 현재 총 52건의 WRO를 유지 중이다. 중국 관련 기업이 36건으로 가장 많고 멕시코·말레이시아·콩고·인도·일본·말라위·네팔·튀르키예·짐바브웨·소말리아·한국 등도 있다.
산업별로는 농업 및 가공식품이 17건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제약·건강·화학(9건) ▲의류·신발·섬유(5건) ▲기계(4건) ▲비금속(4건) ▲산업·제조 재료(4건) ▲다양한 산업(2건) ▲자동차·항공우주(2건) ▲소비재·대량 판매(2건) ▲전자제품(2건) 등이다. 선박에 대한 WRO도 5건으로 나타났다.
미국은 1930년 제정된 관세법에 따라 죄수 노동이나 강제 노동으로 생산된 물품의 수입을 금지하고 있다. 이는 인권 문제도 있지만, 값싼 노동력을 이용해 생산된 상품이 미국에서 불공정 경쟁을 펼치면서 자국 산업에 피해를 주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미국은 2022년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서의 강제 노동으로 제조된 제품의 수입을 차단하는 위구르 강제 노동 방지법(UFLPA)도 제정했다. CBP는 지난 2020년 9월 중국 신장 지역 5개 업체에서 생산된 헤어·의류·면제품·컴퓨터 부품 등의 수입을 금지했다. 그해 12월에는 신장지구 면제품의 17%를 생산하는 국영 기업 신장생산건설병단(XPCC)에 WRO 조치를 내렸다.
2021년에는 중국 1위 폴리실리콘 기업인 허성실리콘과 자회사가 만드는 실리카 제품(폴리실리콘)에 대해 WRO 결정을 내렸다. 제품 생산 과정에서 협박·이동 제한이 확인됐다는 이유다. 태양광 발전용 폴리실리콘의 45%가 신장 지역에서 만들어진다.
일본은 지난 1994년 6월 후추 교도소가 WRO 제재를 받았다. 후추 교도소는 죄수에게 일을 시키는데, CBP는 노역으로 생산된 비디오 게임 커넥터·플러그 등의 수입을 금지했다.
콩고와 짐바브웨는 각각 금과 다이아몬드 원석을 생산하는 소규모 광산이 WRO 조치를 받았다. 콩고는 무장 세력이 주민을 강제로 동원해 금을 채굴했고 짐바브웨는 광산에 군경과 보안 요원을 배치해 노동자의 외출을 금지했다.
세계 최대 의료용 장갑 제조업체인 말레이시아의 '톱 글로브'도 2020년 고무장갑에 대해 수입 금지 조치를 당했다. 톱 글로브 공장 노동자의 80% 이상은 네팔 등의 이주민이었는데, 하루 12시간씩 2교대로 주 6일을 일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들의 열악한 근무 환경은 공장 직원 2500여 명이 코로나에 집단 감염되면서 알려졌다.
이후 톱 글로브는 철회 청원서를 제출하고 외부 독립 기관의 감사를 받으면서 근무 방식과 근로자 숙소를 개선해 2021년 수출이 재개됐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CBP는 지난 4월 전남 신안 태평염전에 WRO를 결정했다. 2021년 지적 장애인 등에 강제 노동을 시킨 이른바 '염전 노예' 사건이 발단이 됐다. 태평염전 측은 WRO 철회를 위한 요청서를 CBP에 제출했으며, 외부 독립 기관의 감사를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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