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신안 태평염전의 소금이 강제 노동으로 생산됐다며 수입을 금지한 미국 국토안보부 산하 관세·국경보호청(CBP·Customs and Border Protection·키워드 참조)이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지역의 강제 노동 실태 조사를 강화하면서 '제2의 태평염전'이 나올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CBP는 국제노동기구(ILO·International Labour Organization)가 규정한 11개 강제 노동 지표를 위반한 사실을 확인하면 해당 국가 제품에 인도 보류 명령(WRO·Withhold Release Order)을 발동할 수 있다. 외국인 근로자가 많은 중소기업이나 농수산물 재배·양식업장에서 강제 노동으로 볼 수 있는 사례가 많아 CBP가 이를 문제 삼으면 해당 제품·농수산물의 미국 수입이 막힐 수 있다. WRO가 발동되면 해당 제품은 미국 도착 즉시 압류된다.
13일 정부와 이주노동자 인권단체에 따르면 CBP는 최근 강제 노동 사례를 온라인으로 제보할 수 있는 포털을 만들고 한국 등 아시아 지역의 주요 이주노동자 단체를 대상으로 포털 사용법을 설명하는 온라인 강의를 진행했다. CBP는 이주노동자 단체에 보낸 메일에서 "일반 대중은 새로운 포털에 모든 강제 노동 혐의를 제출할 수 있다"고 말했다.
CBP는 ▲취약성 악용 ▲사기 ▲이동 제한 ▲신분증 압수 ▲가혹한 생활 및 근로 조건 ▲협박 및 위협 ▲신체적 폭력 ▲채무 노역 ▲임금 지급 거부 ▲과도한 초과 근무 ▲격리 등 국제노동기구가 규정한 총 11개 강제 노동 지표를 위반한 사실을 확인하면 해당 제품 수입을 금지할 수 있다. 태평염전에서는 격리를 뺀 10개의 위반 사항이 발견됐다.
문제는 외국인 근로자가 많은 기업이나 농수산물 재배·양식업에서 강제 노동 혐의를 쉽게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외국인 근로자가 이탈하지 않도록 여권을 압수하거나 일부 농장은 법을 악용해 초과 근무 수당 없이 하루에 11시간씩 일을 시키기도 한다. 임금을 안 주거나 한 방에 6명씩 거주하도록 하는 농가·어가도 있다.
실제 전라도가 19개 시·군 계절 근로자 2539명을 조사한 결과 59명은 항공·비자 발급료 명목으로 중개인에게 급여 일부를 자동 이체로 보내고 있었고 6명은 임금 체불, 23명은 여권과 통장 등을 압류당해 이동이 제한됐다. 필리핀 정부는 한국에서 인권 침해 및 임금 착취가 속출하고 있다며 지난해 계절 근로자 송출을 중단하기도 했다.
미 국무부는 올해 초에도 인권 단체에 접촉해 한국의 강제 노동 사례를 조사한 바 있다. 최근 전남 나주의 한 벽돌 제조 공장에서 한국인 노동자들이 스리랑카 국적 외국인 노동자를 지게차로 들어 올리며 괴롭히는 영상이 인권 단체를 통해 공개됐는데, CBP가 신체적 폭력을 이유로 문제 삼을 수 있다.
농촌·어촌에서 필수 인력으로 꼽히는 외국인 계절 근로자 문제도 심각하다. 미국 국무부는 지난해 발표한 '인신매매 보고서'에 계절 근로자에 대한 브로커의 과도한 수수료 문제를 명시했다.
고기복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 대표는 "미국 정부가 인권 단체 활동가에게 직접 메일을 보내 제보를 독려하는 것은 처음 보는 것 같다. 정부가 미국의 이런 움직임을 안일하게 생각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 미국 CBP는
미국의 국경과 항만 등 300여 입국장에서 불법 물품, 불법 이민, 테러리즘 및 기타 위협을 차단하고 관리하는 정부 기관이다. WRO 발효 권한을 가진 CBP는 강제 노동이나 취약한 환경에서 생산된 제품이 미국으로 수입되는 것을 막고 있다. 글로벌 공급망에서의 윤리적 기준을 강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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