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조선업계가 차세대 먹거리로 꼽히는 자율 운항 선박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첨단 기술로 무장하고 스스로 항해하는 자율 운항 선박은 각국이 국제 기술 표준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경쟁하는 분야다.
정부는 최근 인공지능(AI·Artificial Intelligence) 기반 자율 운항 선박 기술을 국가 전략 기술로 지정하고 세제 혜택을 주기로 했다. 자율 운항 선박은 한국과 미국이 중점 협력할 분야로도 거론된다.
기획재정부는 지난달 31일 '2025년 세제 개편안'을 발표하며 해운 경쟁력 향상을 목표로 AI 지능형 자율 운항 기술을 국가 전략 기술(국가 경제안보 측면에서 전략적 중요성이 인정된 기술)로 지정했다. 관련 설비 제작·실증 시설은 사업화 시설에 추가됐다. 선박 자율 운항 기술과 시설은 앞으로 일반 기술이나 시설 투자 대비 더 높은 세액공제율을 적용받게 된다.
자율 운항 선박은 AI, 사물인터넷(IoT·Internet of Things), 각종 센서 등을 장착하고 소프트웨어 시스템을 통해 사람의 개입 없이 항해하는 배다. 선박 운항의 효율성과 안전성을 높이고 인력 부족 문제도 해소할 수 있는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자율 운항 선박은 한·미 조선업 협력의 중점 과제 중 하나다. 정부는 한·미 관세 협상 합의의 일환으로 1500억달러(약 209조원) 규모의 조선 협력 펀드를 만들기로 하면서 자율 운항 선박 육성 방침을 드러냈다. 선박 설계·건조 경쟁력이 세계 최고 수준인 한국의 하드웨어와 미국의 소프트웨어 강점을 결합해 미래 조선 시장을 선점하겠다는 것이다.
이미 국내 조선사와 미국 AI 기업 간 무인정 공동 개발이 진행 중이다. HD현대중공업(329180)은 지난해 3월 해군 함정 탑재용 무인 수상정(USV·Unmanned Surface Vehicle) 개념 설계 사업을 수주한 후, 현재 미국 AI 소프트웨어 기업 팔란티어테크놀로지스와 손잡고 테네브리스(TENEBRIS)라는 이름의 USV를 공동 개발하고 있다. 내년 완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HD현대(267250)그룹은 선박 자율 운항 전문 자회사 아비커스를 통해 자율 운항 시스템의 상용화를 추진 중이다. 아비커스는 연내 에이치라인해운 선박 30척에 자체 개발한 대형 선박용 자율 운항 설루션 하이나스 컨트롤을 공급할 예정이다.
하이나스 컨트롤은 국제해사기구(IMO·International Maritime Organization)가 분류한 선박 자율 운항 레벨 4개 단계 중 선원이 탑승한 상태에서 다른 곳에서도 원격 제어가 가능한 레벨 2에 해당한다. 해운사 입장에선 AI 자율 운항 시스템을 활용하면 항로를 최적화해 운송 비용을 낮추고 온실가스 배출도 줄이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삼성중공업(010140)은 무인 자율 운항 선박 시프트 오토(Shift Auto)를 실증하고 있다. 2019년 개발에 착수해 지난해 거제 앞바다에 띄운 완전 자율 운항 선박이다.
시프트 오토는 삼성중공업이 개발한 자율 운항 시스템 SAS(Samsung Autonomous Ship)를 탑재해 선원의 개입 없이 항로 설정, 항해 등을 자동으로 수행한다. 삼성전자(005930)의 IoT 시스템 스마트싱스(Smart Things)가 선박 외부에 달린 CCTV, 레이더, 라이다(거리 측정 센서) 등이 측정하는 데이터를 수집한다. 저궤도 위성통신에 연결돼 있어 원격 제어도 가능하다.
IMO는 2032년까지 자율 운항 선박의 국제 표준을 제정할 계획이다. 국내 관련 기술 수준은 노르웨이 등 유럽 국가들에 비해 1~2년 뒤처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부는 지난 1월부터 '자율운항선박 개발 및 상용화 촉진에 관한 법률(자율운항선박법)'을 시행하고 민·관 정책위원회를 통해 연내 향후 10년간의 자율 운항 선박 기술 개발 로드맵을 내놓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