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관 한화(000880)그룹 부회장이 미래 먹거리로 삼은 군용기·함정의 유지·보수·정비(MRO·Maintenance, Repair, Overhaul) 사업 성과가 가시화되고 있다. 작년부터 올해까지 미국 해군 함정 MRO 3건을 수주했고 미군의 대형 기동 헬기 치누크(CH-47 Chinook) 엔진 MRO 수주 가능성이 거론된다. MRO는 단순 정비와 수리를 넘어 성능을 개량하는 고부가가치 사업으로 김 부회장이 공을 들이는 사업이다.
23일 방산 업계에 따르면 한·미는 지난 22일 서울에서 제57차 한·미 군수협력위원회 회의를 열고 치누크 엔진을 한국 방산업체가 참여하는 MRO 시범사업 품목으로 선정했다. 그동안 미 군용기 MRO 시장은 미국의 국제무기거래규정(ITAR)에 따라 한국 기업의 참여가 제한됐다. ITAR은 미국 무기·기술의 해외 이전을 통제하는 법적 장치다.
이번 결정으로 인도·태평양 권역에서 미군이 운용하는 치누크 헬기의 T55 엔진 MRO를 한국에서도 진행할 수 있게 됐다. 지금까지는 헬기 엔진을 미국이나 일본 등으로 옮겨서 정비해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들었다. 치누크에 대한 정보는 거의 없지만, 지금까지 누적 1200대가량 생산된 것으로 전해진다.
국방부는 추후 민간 업체와 계약해 MRO 시범사업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현재 국내에서 군용기 엔진 MRO 기술과 인프라(기반 시설)를 보유한 기업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012450)(한화에어로)가 유일하다.
한화에어로는 T55 계열 엔진을 포함해 46년간 5700대 이상의 항공 엔진을 MRO 했다. 미국 측은 국내 기업의 MRO 능력을 검증하기 위해 올해 초 한화에어로와 대한항공(003490), 한국항공우주(047810)산업(KAI)의 국내 사업장을 찾기도 했다.
한화에어로 창원공장은 미국 연방항공청(FAA) 인증과 유럽항공안전청(EASA) 인증 등 항공 엔진과 관련해 다양한 국제 인증을 보유하고 있다. MRO 물량 확대에 따라 1만6500㎡(약 5000평) 규모의 스마트 엔진 정비 공장도 증설하고 있다.
한화에어로는 헬기에 이어, 미군 전투기 MRO 참여도 추진하고 있다.
한화에어로가 미국 GE에서 라이선스 기술을 도입해 생산하는 F414 엔진은 KF-21을 비롯해, 미군의 F/A-18E/F 슈퍼호넷에도 탑재된다. 양국 전투기에 동일한 엔진이 사용되는 만큼 미군 전투기 MRO 사업의 기회도 열려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모더 인텔리전스에 따르면 글로벌 군용기 MRO 시장은 올해 424억9000만달러(약 59조원)에서 2030년 488억1000만달러(약 68조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기대된다. 함정 MRO도 2029년까지 87조원 규모로 시장이 커질 전망이다.
한화오션(042660)은 작년 7월 미 해군 함정 정비 협약(MSRA)을 체결한 이후, 한 달 뒤에 월리 쉬라의 창정비를 수주했다. 월리 쉬라는 약 6개월간 MRO 작업을 거친 뒤 미군 측에 인도됐다.
지난해 11월에는 미 해군 7함대 소속 급유함 '유콘(USNS YUKON)'호의 정기 수리 사업을 수주했고 이달 초엔 미 해군 7함대 군수지원함 '찰스 드루' 정비 사업을 따냈다.
한화 관계자는 "미군 측 고위급 인사들이 한화에어로 창원과 한화오션 거제 사업장을 방문해 시설을 꼼꼼하게 살펴봤다. 거제의 경우 김 부회장이 직접 동행하는 등 평소 MRO 사업의 중요성을 강조해온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