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말 전남 무안공항 참사를 조사하는 국토교통부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사조위)가 조종사의 작동 과실이 있다는 중간 조사 결과를 내놓은 가운데, 한국민간항공조종사협회(조종사협회)가 "국토부와 사조위가 무한공항 참사에 조종사 과실 프레임을 씌우고 있다"며 강력 규탄했다.

조종사협회는 21일 성명을 통해 "사조위는 사고의 복합성과 전체 시스템 실패라는 본질을 외면한 채 사고의 원인을 '조종사의 실수'라는 단일 요소로 단정 지으려 하고 있다"며 "조사기관으로서의 기본을 망각한 채 처음부터 조종사를 희생양으로 삼고자 설정된 방향성에 따른 왜곡된 결론"이라고 주장했다.

지난 1월 4일 전남 무안국제공항 참사 현장에서 로컬라이저(방위각 시설) 둔덕에 파묻혀 있던 제주항공 7C2216편의 엔진이 트럭에 실려 이동하고 있다./뉴스1

앞서 사조위는 지난 19일 무안공항에서 제주항공 사고 여객기 엔진 조사 결과를 참사 유가족들에게 설명했다. 지난 3월 사고 여객기의 엔진 2개를 엔진 제작사가 있는 프랑스로 보내 정밀 조사를 벌여 왔는데, 조종사가 작동 중이던 왼쪽 엔진을 잘못 끈 것으로 중간 결과가 나왔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왼쪽 엔진 출력이 완전히 사라지면서 비행기의 주전력이 차단됐고, 랜딩기어(착륙 바퀴)도 정상 작동하지 않았다는 것이 사조위의 설명이다.

사조위는 참사 당시 제기됐던 엔진 손상과 활주로 끝에 설치된 콘크리트 둔덕 등은 거론하지 않았다. 이에 조종사협회는 "사조위는 조류 충돌로 인한 양쪽 엔진 손상과 로컬라이저(방위각 시설) 둔덕이라는 중대한 위험 요인이 존재했음에도 조종사에게 결정적 과실이 있는 것처럼 국민에게 인식시키려 했다"며 "이는 아직 조사 중인 사안을 마치 결론인 양 왜곡한 것으로, 항공기 시스템의 전반적 복합 기여 요인을 무시한 잘못된 조사 행태"라고 했다. 이어 "사조위의 비전문성과 후진성을 여실히 드러내는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이날 조종사협회는 ▲불투명한 조사 진행과 책임 전가 행위 즉각 중단 ▲비행기록장치(FDR), 음성기록장치(CVR)를 포함한 전체 사고 조사 관련 자료 공개 ▲유가족 단체가 지정하는 외부 민간 전문가의 사고 조사 참여·조사 진행 전 과정 재검토 ▲국토부의 조류 충돌 및 둔덕 설치 책임 인정 ▲항공 안전법 개정해 조류 관리 및 감시 체계·공항 시설물 관리 규정 강화 ▲공항 구조물 및 위험 요소 제거 계획 공개 등을 요구했다.

조종사협회는 사조위가 국토부 산하에 있는 구조 역시 문제라고 지적했다. 조종사협회는 "조사에 대한 독립성과 객관성을 송두리째 무너뜨리는 명백한 이해 충돌"이라며 "사고 책임 당사자가 조사에 개입한 채 자신들의 책임을 회피하고 조종사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려 한다면 그 어떤 국민도 조사 결과를 신뢰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항공 안전은 관리 당국의 권위적인 행정이 아닌 관료 조직의 구조적 비전문성에 대한 철저한 자기반성과 문제의 개선에서 시작된다"며 "더 이상 꼬리 자르기 식의 사고 조사로 희생자 유가족들에게 상처를 주는 행위를 즉각 중단하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