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국립 조선소 설립과 1·2위 조선사 결합을 통해 조선업 회생에 나섰다. 세계 조선업 1·2위인 중국과 한국에 계속 밀려나는 상황에서 국가적으로 생존 전략을 마련하는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국내 조선업계에선 한·일 경쟁력 격차가 이미 많이 벌어져 있어 한국 조선업계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미국 함정 건조나 유지·보수·정비(MRO·Maintenance, Repair, Overhaul) 시장에서는 경쟁할 것으로 예상된다.
4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일본 정부와 집권 자민당은 정부 예산으로 국립 조선소를 짓고 민간 기업에 운영을 맡기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경제 안보 차원에서 조선업 재건에 나서는 것이다. 섬나라인 일본은 해상 무역 의존도가 절대적이지만 이와 연계된 조선업은 노동력 부족과 시설 노후화로 경쟁력이 크게 떨어진 상태다.
일본 정부는 2030년까지 일본의 선박 건조 능력을 두 배로 늘려 전 세계 선박 건조 점유율을 20%로 끌어올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영국 조선·해운 시황 분석 기관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의 선박 신규 수주 점유율은 7%로, 중국(71%)·한국(17%)에 한참 못 미쳤다. 자민당은 공공·민간에서 투입해야 할 금액을 1조엔(약 9조4500억원)으로 추산했다.
일본 상위 조선사들은 서로 합쳐 몸집 키우기를 시도하고 있다. 일본 1위 조선사 이마바리조선은 2위 재팬마린유나이티드(JMU)의 지분을 추가 인수해 자회사로 만드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마바리조선은 JMU의 기존 최대 주주 측에서 주식을 추가 매입해 JMU 지분율을 현재의 30%에서 60%로 높여 지배력을 확보할 계획이다. 인수가 완료될 경우 이마바리조선은 세계 선박 건조량 순위 6위(2024년)에서 한화오션(042660)을 제치고 4위로 올라갈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지분 인수를 두고 두 회사가 강점을 합치고 약점을 보완해 한·중 경쟁사 대비 경쟁력을 높이려는 의도가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마바리조선은 상선이 주력이고 JMU는 군함 분야에서 두각을 보이고 있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이마바리가 두 회사를 하나의 회사처럼 경영하면 조선 부문의 다양한 수요에 더 잘 대응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조선업계에선 현재 일본이 건조 물량이나 기술력, 주력 선종, 수주 규모 등 거의 모든 면에서 경쟁 열위이기 때문에 일본의 조선업 회생 작전이 국내 조선업계에 미칠 영향은 미미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일본은 수주 잔고에서 수익성이 낮은 벌크선 비율이 절반에 달한다. 국내 조선사가 수주 잔고의 절반을 고부가가치 선종인 액화천연가스(LNG·Liquefied Natural Gas) 운반선으로 채운 것과 대조적이다.
일본은 야드(선박 건조장)당 선박 건조 활용률도 가장 낮다. 네덜란드 ING싱크가 지난해 12월 낸 '아시아 조선업 르네상스'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의 야드당 수주 수(척 기준) 비율은 13.3으로, 한국(70.9)·중국(21.3)보다 낮았다.
조선업계에선 일본이 대규모 조선업 부활 방안을 내놓은 것은 미국과의 조선업 협력을 준비하는 차원이란 해석이 나온다. 일본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정부의 관세 압박에 대응해 미국 조선업 재건 지원을 협상 카드로 쓰고 있다. 한·일은 미군 함정 건조나 MRO 시장에서 경쟁할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