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국내 정유사의 실적이 악화할 것이란 전망이 늘고 있다. 최근 유가가 크게 떨어지면서 수익 지표인 정제 마진이 감소한 데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으로 경기 침체 가능성도 커졌기 때문이다. 향후 실적이 반등하면 횡재세 도입 주장이 다시 나오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16일(현지 시각)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서부텍사스산원유(WTI) 5월 인도분 가격은 전날보다 1.14달러(1.9%) 오른 배럴당 62.47달러로 마감했다. 세계 최대 원유 수입국인 중국이 미국 대신 캐나다 원유로 눈을 돌렸다는 소식에 이날 가격이 반등했지만, 최근 유가는 내림세가 계속돼 왔다.

WTI는 지난달 말 배럴당 71.48달러를 기록한 이후 이달 들어서만 약 13% 하락했다. 지난 8일에는 59.58달러로 마감하며 2021년 4월 이후 4년 만에 60달러 밑으로 내려가기도 했다.

SK이노베이션 울산 공장 전경. /SK이노베이션 제공

최근 유가가 큰 폭으로 하락한 것은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으로 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International Energy Agency)는 이날 발간한 보고서에서 "미국의 관세 부과로 무역 갈등이 심화하고 있다. 올해 하루 평균 세계 원유 수요가 전년 대비 103만배럴(1배럴은 158.9리터)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으나 73만 배럴로 감소할 것"이라 전망했다.

유가 하락세가 지속되면서 정유사 수익과 직접 연결되는 정제 마진도 줄어들 가능성이 커졌다. 정제 마진은 정유사가 원유를 정제해 얻는 휘발유, 경유 등 석유 제품의 가격에서 원유 가격을 뺀 수치다.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에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고 있다. 미국은 대중(對中) 관세율을 81%에서 125%로 올렸고 지난 10일부터는 145%로 인상했다. 이에 중국 역시 미국에 대해 125%의 관세를 물리기로 하면서 두 나라의 무역 갈등이 장기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 때문에 국내 정유업계에서는 지난해 감소했던 영업이익이 올해도 줄어들 것이란 비관론이 나온다. 대한석유협회는 지난 15일 가진 '석유 현황과 과제' 설명회에서 "미국의 관세 정책, 중국 경기 침체 장기화로 올해 실적 악화가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SK이노베이션(096770)과 GS칼텍스, 에쓰오일(S-Oil(010950)), HD현대오일뱅크 등 국내 정유 4사는 지난해 실적 부진을 겪었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해 영업이익이 3155억원으로 전년 대비 83.4% 급감했고 GS칼텍스는 67.4% 줄어든 5480억원을 기록했다. 에쓰오일과 HD현대오일뱅크 영업이익은 각각 68.8%, 58.2% 감소했다.

정유 4사의 영업이익률은 호황이었던 지난 2022년 6.4%를 기록했지만, 2023년에는 1.4%로 급락했고 지난해에는 -0.1%로 내려앉았다.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공명선거 실천 협약식에 참석했다./뉴스1

정유업계는 대선을 앞두고 횡재세 도입 논의가 다시 나오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횡재세는 이익이 많은 기업에 법인세 외에 추가로 세금을 징수하는 것이다. 정유사는 은행과 함께 대표적인 횡재세 대상으로 지목돼 왔다.

유력 대선 주자인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과거 여러 차례 도입 필요성을 주장해 왔다. 그는 지난 2023년 "이미 영국과 그리스, 루마니아, 이탈리아 등은 에너지 산업에 횡재세를 도입했고, 미국도 석유회사의 초과이익에 과세하는 법안을 발의했다"고 말했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최근 정유사 실적이 크게 나빠졌고 경기 침체도 지속되고 있어 정치권에서 횡재세 도입에 큰 관심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