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국제해사기구(IMO·International Maritime Organization)의 해운 탈탄소화 협상에서 철수하겠다고 밝히면서 전 세계 해운, 조선업계가 주목하고 있다. IMO는 해운과 조선에 관한 국제적인 문제를 다루기 위해 설립된 유엔 산하 국제 기구다.
IMO는 2050년 온실가스 순 배출량 '0′인 넷제로(Net-Zero)를 목표로 선박 관련 환경 규제를 강화하고 있는데, 미국이 반대하면서 힘이 빠지게 됐다. 환경 규제가 무산되면 해운사는 비용 부담이 줄게 되지만, 조선업계는 친환경 선박 교체 수요가 감소할 수 있다.
10일 해운업계에 따르면 IMO는 영국 런던에서 지난 7일(현지 시각)부터 11일까지 제83차 해양환경보호위원회(MEPC·Maritime Environment Protection Committee)를 열고, 해운 탄소세 금액을 조율할 예정이다. 물건을 싣고 바다를 돌아다니는 배는 막대한 양의 온실가스를 내뿜어 지구 온난화의 주범으로 꼽히는데, 온실가스에 세금을 매겨 탄소 배출을 줄이려는 것이다. 탄소세는 온실가스 톤(t)당 100달러 선으로 추정되며, 2027년부터 적용될 예정이다.
미국은 IMO 회원국으로 협상에 참여해 오다 돌연 불참을 선언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국 선박에 경제적 부담을 지울 경우 회원국에 보복하겠다고 언급했다. 친환경 정책에 부정적인 트럼프 대통령은 탈탄소화 협상이 비싸고, 검증되지 않은 연료 사용을 강요해 해운 산업에 부담을 준다고 비판했다. 인플레이션을 유발한다는 것도 반대 이유로 들었다.
미국이 빠지면 해운 탈탄소화 협상은 추진 동력이 약해질 전망이다. 현재 IMO 회원국은 총 179개로 개발도상국이 다수 포함됐다. 개발도상국은 선진국이 주도하는 탄소세가 '사다리 걷어차기(성공한 사람이 다른 사람은 성공하지 못하도록 차단하는 행위)'라고 비판해 왔다. IMO는 유럽이 주도하고 있다.
해운업계는 IMO 협상 결과를 주시하고 있다. 탄소세가 붙지 않으면 비용 부담이 줄고 기존 선박을 친환경 선박으로 바꾸는 시기를 뒤로 미룰 수 있다. 반면 해운 탈탄소화라는 방향성이 바뀌기는 어렵기 때문에 미국의 입장 변화로 혼란만 키운다는 의견도 있다.
탄소세가 무산되면 조선업계는 친환경 선박 발주가 줄어들 수 있다. 한국 조선사들은 액화천연가스(LNG·Liquid Natural Gas) 운반선 등 친환경 선박 교체 수요로 일감을 대거 수주했다. IMO는 선박을 탄소배출 효율 기준(AER)에 따라 A~E 등급으로 나눴는데, 최하위 E등급은 1년 내 등급을 개선하지 못하면 운영이 불가능하다.
해운 탄소세 금액이 확정되면 전 세계가 특정 산업 분야에 탄소세를 매기는 첫 사례가 된다. 세계은행은 해운 탄소세를 t당 100달러로 책정할 경우, 2025년부터 2050년까지 해운업계가 부담해야 하는 비용이 최대 600억 달러(약 87조4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