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의 종전(終戰) 합의가 급물살을 타면서, 실적 악화로 신음했던 국내 석유화학 업계의 반등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전쟁이 끝나고 러시아에 대한 서방의 제재가 풀려 러시아산(産) 원유가 전 세계에 공급되면 석유화학 회사의 수입 부담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국내 석유화학 회사들은 러시아로부터 저렴하게 원유를 공급받은 중국이 싼값에 물량을 쏟아내 최근 수년간 어려움을 겪어왔다.

12일(현지 시각) 로이터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날 자신의 소셜미디어(SNS)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전쟁을 끝내기 위한 협상을 시작하기로 합의했다"는 글을 올렸다. 백악관도 공식 성명을 통해 미국이 러시아·우크라이나의 종전 합의에 전력을 다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면 러시아산 원유의 공급 증가로 국내 석유화학 업체들의 가격 경쟁력이 살아날 것으로 전망된다. 사진은 롯데케미칼 여수공장 전경. /롯데케미칼 제공

미국과 유럽연합(EU) 등 서방 국가들은 지난 2022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러시아에 대한 경제 제재에 나섰다. 미국은 2022년 3월부터 러시아산 원유와 석탄 수입을 금지했고, EU 회원국들도 그해 말부터 원유 수입을 차단했다.

한국도 서방의 제재 영향으로 러시아산 원유의 수입을 막았다. 대한석유협회에 따르면 전쟁 전인 2021년 전체 원유 수입 물량에서 러시아산 비중은 5.4%였다. 석유화학 원료인 나프타 역시 약 24%를 러시아에서 수입했었다. 현재는 원유와 나프타 모두 러시아에서 수입을 하지 않고 있다.

서방국가가 러시아를 제재하자 중국이 큰 이익을 봤다. 러시아가 시세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원유와 나프타를 중국에 대량으로 공급했기 때문이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과 한국무역협회 등에 따르면 지난 2023년 중국의 원유 수입 규모는 전년 대비 11% 급증한 5억6399만t(톤)에 달했지만, 수입액은 3355억달러(약 485조8700억원)로 오히려 7% 감소했다. 러시아에서 싼 값에 원유를 들여온 영향이다. 한국은 2023년에 수입 원유에 t당 643달러를 지불한 반면 중국은 7% 이상 저렴한 595달러에 원유를 수입했다.

국내 업체들이 러시아산 나프타를 수입하지 못해 원가 부담이 커진 반면 중국은 저가에 원료를 확보하면서 가격 경쟁력에서 우위를 차지했다. 이를 무기로 중국이 싼 가격에 석유제품을 대량으로 공급하면서 국내 석유화학 회사의 실적은 눈에 띄게 악화됐다.

롯데케미칼(011170)의 경우 지난해 매출은 20조4304억원으로 전년 대비 2.4% 늘었지만, 영업손실은 8948억원으로 157.3% 급증했다. 중동에서 비싼 원유를 들여와 중국 업체들과 경쟁하다 보니 수익성이 떨어진 것이다.

석유화학 업계 관계자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고 러시아산 원유의 공급이 늘면 국제유가도 하향 안정화될 것"이라며 "반대로 3년간 러시아에서 값싼 원유를 수입했던 중국 업체들은 원가 부담이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서울 시내의 한 주유소./뉴스1

정유사들의 실적 반등 기대감도 커졌다. 원유 수입 가격이 하락하면 수요가 늘어나고, 이는 정유사의 정제 마진 개선과 수익 증가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자국 원유 생산량을 늘리겠다고 한 점도 정유사들의 실적 개선 가능성이 커진 이유로 꼽힌다.

국내 최대 정유사인 SK이노베이션(096770)은 원유 수입 부담이 줄어들 경우 올해 실적이 크게 반등할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 전기차 시장 위축으로 계속된 자회사 SK온의 실적 부진을 정유 사업의 수익 증가로 만회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