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캐나다·멕시코산(産) 수입품에 대한 고율 관세 부과를 유예하기로 했다. 두 나라가 마약과 불법 이민자 단속 요구에 협조하기로 한 점이 유예 이유로 꼽혔지만, 미국 기업이 겪을 막대한 피해를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반면 캐나다·멕시코와 달리 유럽은 미국의 생산 기지가 적어 관세 부과가 엄포에만 그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3일(현지 시각) CNN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와 두 차례 통화한 뒤 자신의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캐나다에 대한 25%의 관세 부과를 30일간 유예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트뤼도 총리는 마약 문제를 담당할 ‘펜타닐 차르’를 임명하고 국경 강화에 13억달러(약 1조9000억원)를 투입하기로 약속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멕시코에 대한 25%의 관세 부과도 30일 동안 유예하겠다고 밝혔다.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멕시코 대통령이 미국·멕시코 국경에 마약과 불법 이민자 단속을 위해 군인 1만명을 투입하기로 약속한 데 따른 조치다.

◇ 캐나다·멕시코 관세는 ‘협상용’… 부과되면 美 기업 타격
경제계와 금융 시장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대(對)캐나다·멕시코 관세 부과 발표는 애초부터 ‘협상용 카드’였다는 의견이 나온다. 두 나라에는 미국의 거대 제조업 기업이 대규모 생산 시설을 두고 있어 25%의 관세가 부과되면 미국 경제가 큰 타격을 입기 때문이다. 많은 미국 기업은 지난 2020년 미국과 멕시코, 캐나다 3개국의 자유무역협정(USMCA)이 체결되자 인건비와 공장 건설 비용이 적은 멕시코에 생산 기지를 만들었다.
지난 2023년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수출된 차량은 총 255만4000대였다. 이 중 제너럴모터스(GM), 포드, 스텔란티스 등 미국 3대 자동차 그룹이 생산한 물량은 전체의 절반이 넘는 131만3000대에 달했다. 미국 최대 자동차 기업인 GM은 지난해 글로벌 자동차 제조사 중 가장 많은 84만2000대 이상의 차량을 멕시코에서 생산했다. 멕시코에는 또 여러 전기자동차 부품사 공장도 있어 관세가 부과되면 미국 완성차 업체들이 부품 수급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캐나다에 대한 고율 관세도 미국 자동차 회사에 불똥이 튈 만한 조치였다. 미국 기업은 한국의 전기차 배터리 제조사와 합작해 캐나다에 공장을 건설했다. 스텔란티스는 LG에너지솔루션(373220)과 손잡고 캐나다 온타리오에 공장을 지어 작년부터 가동을 시작했고, GM과 포스코퓨처엠(003670)의 합작사 얼티엄캠은 캐나다 퀘벡에 양극재 생산 시설을 만들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거의 모든 자동차 제조사가 캐나다, 멕시코, 중국산 수입품에 대한 관세로 어려움을 겪겠지만, 이 중 GM이 가장 큰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1일 보도했다. GM은 2010년대 후반부터 글로벌 사업장에 대한 구조조정을 진행해 전기차 등 일부 차종을 제외한 대부분의 볼륨모델(대량 생산·판매 차량)을 해외에서 생산해 미국으로 들여오고 있다.

◇ 유럽은 관세 부과해도 美 타격 작아
트럼프 대통령은 유럽연합(EU)에서 들어오는 수입품 전체에 대해서도 10%의 관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미국은 EU의 전체 수출에서 약 20%를 차지하는 최대 수출국이다. 지난 2023년 EU는 미국과의 상품 교역에서 1600억달러(약 234조원)에 이르는 흑자를 기록했다.
유럽은 인건비가 비싸고 미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멕시코, 캐나다와 달리 대서양을 건너기 위한 물품 운송 비용이 많이 붙는다. 이 때문에 유럽에 공장을 둔 미국 기업이 적어 관세가 부과돼도 미국 제조업이 받을 타격은 크지 않다는 분석이 많다.
미국으로 들어오는 품목도 다르다. 미국이 멕시코에서 수입하는 품목은 주로 자동차와 부품, 가전제품 등이라 실제 관세가 붙을 경우 인플레이션에 영향을 미치고, 미국 기업이 생산에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크다. 캐나다에서도 전기차 배터리와 소재, 광물 등을 수입하고 있다. 그러나 유럽에서 수입하는 품목은 식자재와 주류, 명품 등의 비중이 커 미국 기업이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거의 없다. 미국은 지난 2023년 EU에서 올리브오일 15억달러, 와인 47억달러, 치즈 12억달러를 각각 수입했다.
EU를 겨냥한 관세 부과는 협상용 카드가 아니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는 또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캐나다와 멕시코에 요구한 것은 국경 관리와 마약, 불법 이민자에 대한 관리 강화라 두 나라의 즉각적인 조치가 나올 수 있었다. 유럽에 대해서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방위비 증액과 미국 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 완화 등을 요구하고 있다. 회원국들의 합의가 필요한 데다, 방위비 확대는 대규모 예산이 필요해 쉽사리 미국이 관세 부과를 유예할 만한 조치가 나오기 어렵다.
이 때문에 경제계에서는 EU에 대한 관세 부과가 실제로 시행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트럼프 1기 행정부 시절 미국은 EU에서 들어오는 가방, 와인, 치즈, 철강 등에 25%의 관세를, 알루미늄에 10%의 관세를 각각 부과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