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영풍·MBK파트너스의 기습적인 공개매수 선포로 시작된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이 4개월 가까이 이어지는 가운데, 이사회를 장악하기 위해 현 경영진과 영풍·MBK가 이달 23일 임시 주주총회에서 첫 표 대결을 벌인다. 양측의 지분이 비슷한 상황이라 비철금속 세계 1위 기업인 고려아연의 경영권 향방은 외국인·기관 주주들이 결정하게 됐다. 임시 주총의 주요 쟁점을 살펴본다.[편집자 주]

고려아연(010130) 경영권 분쟁의 향방은 전체 지분의 약 13%를 보유 중인 것으로 추정되는 외국인 주주들이 결정할 전망이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주총 안건을 심사할 때 활용하는 지표 중 하나는 ESG(Environment·Social·Governance, 환경·사회·지배구조) 평가 결과다.

영풍(000670)·MBK는 고려아연의 지배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경영권 확보에 나섰다고 주장한다. 영풍·MBK는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의 주도로 본업과 무관한 투자가 지속되고 있다고 보고, 고려아연은 신사업을 추지하기 위한 정상적인 투자라고 반박한다. 영풍·MBK는 고려아연의 지배구조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하지만, 국내외 기관이 평가한 고려아연의 지배구조는 양호한 수준이다. 특히 현 경영진이 중간배당을 시행하고 자사주를 소각하면서 주주환원을 늘려 지배구조 부문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대신경제연구소 자회사 한국ESG연구소는 고려아연의 ESG 종합평가 등급을 2023년 상·하반기 각 A에서 작년 상반기 A+로 높였다. 고려아연은 국내 철강금속산업 47개 기업 중 1위를 차지했고, 조사 대상인 국내 상장사 1092곳 전체에선 상위 2.3%에 들었다. 한국ESG연구소는 지난해 하반기에도 고려아연에 A를 줬다.

고려아연이 호주 SMC제련소 인근에 설치한 태양광발전단지. /고려아연 제공

또 다른 ESG 평가기관 겸 의결권자문사 서스틴베스트는 고려아연의 ESG 종합평가 등급을 2023년 상·하반기 BB, A에서 작년 상·하반기 AA, A로 조정했다. 고려아연은 지난해 상반기 자산 2조원 이상 기업 50곳 중 전체 2위, 제조업 분야에서는 1위에 올랐다. 한국ESG기준원은 고려아연의 ESG 종합평가 등급을 2023년 B에서 2024년 B+로 높였다.

평가기관들은 고려아연의 지배구조 개선에 높은 점수를 줬다. 한국ESG연구소는 고려아연의 지배구조 등급을 2023년 상·하반기 각 B에서 지난해엔 모두 A로 두 단계 상향 조정했다. 준법지원인 선정, 이사회 내 다양성 증가 등 항목에서 점수가 올랐다. 내부통제 및 경영투명성 항목에선 철강금속업에서 최상위를 기록했다.

서스틴베스트는 2021년부터 4년 연속 고려아연의 지배구조 등급을 A로 유지하고 있다. 서스틴베스트는 지배구조 측면에서 사외이사의 이사회 참석률, 이사회 구성의 적정성, 이사회 의장과 대표이사 분리, 내부거래위원회 운영 등 항목에서 점수를 높였다. 한국ESG기준원은 고려아연 지배구조 등급을 2023년 C에서 지난해 B+로 높였다.

미국 의결권 자문사 글래스루이스(Glass Lewis)는 이사회 독립성을 평가할 때 이사회 의장과 최고경영자(CEO) 분리를 중요하게 본다. 고려아연은 최윤범 회장이 대표이사로 취임한 후인 2021년 지속가능경영위원회를 신설하고 ESG 경영을 본격화했다. 최 회장은 지난해 3월 고려아연 대표이사직에서 사임하고 이사회 의장만 맡다가, 같은해 11월 이사회 독립성을 강화하는 취지에서 이사회 의장직도 내려놓겠다고 밝혔다. 정관 변경을 통해 사외이사가 이사회 의장을 맡게 하는 방안을 이번 임시주총 안건으로 올렸다.

고려아연은 환경(Environmental responsibility)과 사회적 기여도(Social responsibility) 부문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 한국ESG연구소 평가에서는 환경 분야에서 철강금속업계 2위를 기록했다. 사단법인 한국ESG학회는 지난달 고려아연이 전력을 많이 쓰는 전력 다소비 기업에서 자원재활용에 앞장서는 친환경 기업으로 전환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고려아연은 신재생에너지·그린수소, 자원순환, 이차전지 소재로 이뤄진 신사업 트로이카 드라이브를 진행하며 친환경 에너지 전환과 폐자원의 재활용 생태계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MBK와 함께 고려아연 경영권을 노리는 영풍은 환경오염과 산업재해 문제 등으로 ESG 등급이 떨어졌다. 영풍은 2023년 서스틴베스트로부터 B 등급을 받았으나 작년엔 C 등급으로 하락했다. 한국ESG기준원 평가에서도 B+ 등급에서 B 등급으로 낮아졌다. 한국ESG기준원은 부문별로 환경(E)·사회(S) 등급을 각 B+에서 B로 낮췄다.

영풍의 경북 석포제련소에서는 폐수 유출, 산업재해 등이 잇따라 발생했다. 대법원은 작년 11월 영풍의 물환경보전법 위반 등에 대해 2개월 조업정지 행정처분을 확정했다. 영풍은 2021년 낙동강 카드뮴 오염수 배출 혐의로 281억원의 과징금 처분을 받기도 했다. 박영민 영풍 대표이사와 배상윤 석포제련소장(대표이사)은 잇단 근로자 사망 사고로 중대재해처벌법·산업안전보건법 등 위반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고려아연의 호주 신재생에너지 개발사업 계열사인 아크에너지의 풍력발전단지. /고려아연 제공

고려아연은 최근 몇 년간 배당과 자사주 소각을 늘리며 주주환원을 강화했다. 주주환원은 기업지배구조의 선진성을 평가하는 주요 지표 중 하나다.

고려아연의 주주환원율(배당액과 자사주 매입·소각액의 합을 순이익으로 나눈 값)은 2021년 43.8%에서 2022년 50.9%로 높아진 데 이어, 2023년 76.3%로 창사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고려아연은 2023년 중간배당 총 1986억원(주당 1만원), 결산배당 총 1040억원(주당 5000원)을 지급하고 1000억원 규모의 자사주를 취득·소각했다. 당기순이익 5332억원을 벌어 4026억원을 주주에게 환원했다는 뜻이다.

2023년 고려아연 주주환원율(76.3%)은 KB증권이 집계한 2013년~2022년 국내 상장사의 평균 총주주환원율(28%)보다 두 배 이상 높고 선진국(미국 제외) 평균 총주주환원율(68%)도 넘어섰다. 소액주주운동 플랫폼 액트의 윤태준 연구소장은 고려아연의 주주환원율이 금융회사와 지주사를 제외하면 대기업 중 상위 5위 안에 드는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아직 지난해 고려아연 연간 실적과 결산배당액이 발표되지 않았으나, 2023년 수준의 결산배당을 적용하면 지난해 고려아연 주주환원율은 100%가 넘을 것이란 추정치도 있다.

고려아연은 2023년 중간배당(반기배당)을 도입해 지난해까지 2년 연속 중간배당을 지급했다. 오는 23일 임시주총에선 정관을 개정해 배당금 지급 주기를 현재 연 2회 배당에서 연 4회 분기 배당으로 바꿀 계획이다. 고려아연 관계자는 “3개월 단위 분기 배당으로 전환하면 주주들이 더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하게 배당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고려아연. /고려아연 제공

MBK의 고려아연 인수 시도에 대한 미국 의회 일각의 우려 표명이 외국인 주주 투표에 어떤 영향을 줄지에도 관심이 모인다. 에릭 스월웰 미국 하원의원은 미 의회 내 의원 협의체인 ‘핵심광물협의체’ 공동의장 자격으로 지난달 호세 페르난데스 미 국무부 차관에게 “MBK가 고려아연을 지배할 경우 기술이 중국 측에 넘어갈 수 있고 중국으로부터 핵심 광물 공급망을 보호하고 확장하는 미국과 한국의 공동 노력에서 중요한 글로벌 플레이어(고려아연)가 해체될 수도 있다”는 내용의 서한을 보냈다.

스월웰 의원은 MBK의 중국 투자 이력을 언급하며 “중국에 기반을 두거나 중국의 자금 지원을 받은 법인이 (MBK의 고려아연 인수 후) 다양한 거래에 참여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