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으로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가 강화될 전망인 가운데 유럽에서도 새로운 지도부를 중심으로 비슷한 움직임이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한국무역협회(무협)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이 18일 발간한 '폰데어라이엔 집권 2기 유럽연합(EU) 통상정책' 보고서에 따르면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이 이끄는 2기 EU 집행위는 산업 경쟁력 및 경제안보 강화를 기조로 삼을 전망이다.
이달 출범한 폰데어라이엔 2기 EU 집행위는 경제 위축, 정치적 동력 약화, 대외경쟁 심화, 미국 트럼프 재집권 등에 대응하기 위한 여러 조치를 검토하는 상황이다. 1기 EU 집행위가 환경, 인권 등 가치를 중심으로 통상정책을 추진한 것과는 다소 상반된 모습이다.
2기 EU 집행위는 기존의 '그린딜' 정책을 '청정 산업딜'로 전환해 탄소중립 목표 달성에 속도를 내는 동시에 산업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초점을 맞출 것으로 예상됐다. '바이 유러피안(Buy European)' 정책을 통해 공공조달에서 역내 제품을 우선 구매하고, 자동차·풍력 산업에서 친환경 철강 사용 요건을 도입하는 방안 등도 논의 중이다.
중국을 견제하고 역내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반덤핑·상계관세 등 수입규제, 역외보조금규정(FSR) 도입, 수출통제 및 투자제한 조치 등 정책을 강화할 계획이다. 역외보조금규정은 전통적 수입규제로 대응이 어려운 공공조달, 기업결합 등 분야에서 역외국 정부 보조금으로 인한 경쟁 왜곡을 규제하는 것이 핵심이다.
다만 대중국 견제 기조는 유지하더라도 유럽의 대중 무역·투자 의존도가 높은 만큼, 미국처럼 고율 관세를 부과하긴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다. EU의 제3국 의존도가 높은 전략품목 204개 중 64개(약 31%)는 중국에 의존하고 있고, 그 중 3분의 2 이상은 중국이 단일 공급원으로 수출통제 등 조치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보고서는 국내 기업들은 EU의 중국 기업 제재에 따른 간접적인 영향에 유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난 7월 EU 반덤핑 조사를 개시한 에폭시수지 사례처럼 중국의 공급 과잉으로 피해를 본 현지 기업이 중국뿐 아니라 한국 기업을 함께 제소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한아름 무역협회 수석연구원은 "EU의 친환경 분야 투자 확대는 현지에서 대규모 공장 신·증설을 진행 중인 우리 이차전지 기업 등에 기회 요인이 될 것"이라면서도 "투자 유인책과 더불어 역내산 원재료·부품 조달 요건도 함께 도입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는 만큼 진출 기업의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