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계엄 사태에 이어 야당의 대통령 탄핵 추진으로 정국이 격랑에 휩싸이면서, 경제계도 혼란에 빠졌다. 주요 기업들은 환율과 금융 시장이 요동치는 가운데 정치적 상황마저 불안정해 이미 짜놨던 내년 사업 계획을 전면 재검토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8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 SK(034730), 현대차(005380)그룹, LG(003550) 등 주요 그룹은 비상계엄 사태 이후 사업과 투자 등에 어떤 영향이 있을지 상황별 대응 방안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수출 비중이 큰 A기업 관계자는 "지난달 초에 내년도 사업계획을 수립하고 현재는 각 본부별로 세부 실행 방안을 마련하는 중이었다"며 "최근 정국이 불안정해 경영진이 계획을 수정할 지 고심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6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열린 '내란범 윤석열 즉각 탄핵! 민심거역 국민의힘 규탄! 민주노총 결의대회'에서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뉴스1

주요 기업들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후보의 당선으로 보편 관세 부과에 대한 우려가 커진 상황에서 탄핵 정국이 수출과 미국 사업을 더 위축시킬 수 있다고 우려한다. 트럼프 당선인은 줄곧 수입품에 대해 10~20%의 보편 관세를 매기겠다고 공언해 왔다.

또 다른 수출 대기업인 B사 관계자는 "만약 대통령 탄핵이 현실화되고 국정 공백이 발생하면 미국 정부가 한국을 파트너로 여기고 국내 기업의 요청에 귀를 기울이겠느냐"며 "미국에서의 대관이 더 어려워질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SK, 현대차, LG 등은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 폐기·수정 여부를 주시해야 하는 상황이다. IRA는 미국에서 생산된 배터리와 이를 탑재한 전기차에 보조금을 주는 법안이다. 국내 대기업들은 IRA의 수혜를 얻기 위해 거액을 투자해 미국에 생산 시설을 만들었는데, 이 법에 반대하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애초 기대했던 성과를 얻지 못할 가능성이 커졌다.

삼성전자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 반도체 공장 공사 현장. /삼성전자

환율을 포함한 금융 시장의 혼란도 고민거리다. 지난 9월 초 원·달러 환율은 1300원대 초반을 기록했지만, 지난 6일 1421원으로 치솟았다. 정국 불안이 길어지면 원화에 대한 신뢰도가 하락해 환율 상승세가 이어질 수 있다. 이 경우 수출 기업은 수익성이 높아지지만, 원자재 수입 비중이 큰 기업은 부담이 커진다.

한화그룹 관계자는 "1420원대의 환율은 이미 경험했기 때문에 당장 사업계획을 수정할 상황은 아니지만, 고환율이 내년까지 이어질 가능성까지 고려해 계속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화는 방위산업, 에너지, 화학 등 여러 업종의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이 관계자는 "방산의 경우 수출 비중이 커 고환율이 유리하지만, 원자재 구매 비용은 늘 수 밖에 없다"며 "에너지, 화학 부문도 환율 상승의 부담이 크다"고 말했다.

재계는 내년 사업과 투자를 올해보다 보수적으로 잡아둔 상황이다. 한국경제인협회가 국내 매출액 상위 5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이달 초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투자를 올해보다 확대하겠다고 밝힌 기업은 12.8%로 전년 대비 16%포인트(P) 감소했다. 반대로 투자를 줄이겠다고 한 회사는 18%P 늘어난 28.2%로 집계됐다.

대기업 C사 관계자는 "내년 사업계획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불안정한 정국'을 고려한 위기 관리가 특히 강조되고 있다"며 "현재는 과감한 투자보다는 보수적인 방향으로 검토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