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지난 5일(현지 시각) 대선에서 승리하면서 현재 미국이 멕시코산(産) 제품에 주고 있는 관세 면제 혜택이 사라질 가능성이 커졌다. 면세 혜택이 사라지면 미국에서 판매할 제품을 저렴하게 생산하기 위해 멕시코에 공장을 지었던 국내 기업들에 타격이 예상된다.
8일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에 따르면 멕시코에는 기아(000270), 포스코인터내셔널(047050) 등 2000여개의 국내 기업이 진출해 있다. 지난 2021년 LG전자(066570)와 북미 1위 자동차 부품 제조사인 마그나 인터내셔널이 합작해 만든 LG마그나도 멕시코 코아우일라 지역에서 공장을 가동 중이다.
멕시코에 들어간 국내 기업은 대부분 완성차나 자동차 부품사들이다. 미국, 멕시코, 캐나다 3개국이 체결한 자유무역협정(USMCA)에 따라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수출되는 자동차는 연간 260만대까지 무(無)관세 혜택을 받는다. 미국에 비해 인건비 등 각종 비용이 훨씬 저렴하면서 사실상 미국산 제품과 동일하게 인정 받을 수 있어 국내 완성차·부품사들은 앞다퉈 멕시코에 공장을 지었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USMCA가 지난 2020년 발효된 이후 ‘니어쇼어링(nearshoring)’ 전략으로 멕시코에 투자하는 글로벌 기업이 크게 늘었다”고 설명했다. 니어쇼어링이란 ‘가깝다’는 뜻의 ‘니어(near)’와 생산 시설의 국내 복귀를 뜻하는 ‘리쇼어링(reshoring)’의 합성어로 비용이 저렴한 인접 국가로 기업이 모이는 것을 의미한다.
기아는 미국에서 판매하는 프라이드(수출명 리오)와 K3 등을 멕시코 누에보 레온의 공장에서 만든다. 기아의 멕시코 공장 투자 규모는 지난해 1780억원에 달했다. 이는 전년 대비 750% 넘게 급증한 수치다. 기아는 멕시코 공장에서 전기자동차를 생산할 수 있도록 일부 라인을 개조하는데 많은 비용을 쓴 것으로 전해졌다.
포스코인터내셔널은 지난해 멕시코 코아우일라 지역에 지은 공장에 2030년까지 1600억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이 공장에서는 전기차 구동모터의 핵심 부품인 구동모터코어를 생산한다. LG마그나 역시 코아우일라에 둔 공장에서 구동모터와 인버터를 만들고 있다.
LS이모빌리티솔루션은 두랑고 지역에서 전기차 부품인 EV릴레이와 BDU 등을 만들고 있다. HL만도(204320)는 코아우일라에서 기아와 제너럴모터스(GM), 포드 등에 납품하는 부품을 생산 중이다. HL만도는 약 2억달러(약 2786억원)를 추가 투자해 코아우일라 공장 증설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당선인은 대선 유세 과정에서 멕시코에 주는 무관세 혜택을 비판하며, 재협상에 나서겠다는 뜻을 밝혀왔다. 그는 지난 7월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중국은 미국에 무관세로 수출하기 위해 멕시코에 대규모 자동차 공장을 짓고 있다. 그들이 우리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으면 100~200%의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고 했다. 지난달에는 “취임하면 멕시코와 캐나다에 USMCA 재협상 조항을 발동하겠다고 통보할 것”이라고도 했다.
USMCA는 2020년 효력이 시작됐는데, 6년마다 협정 이행 사항의 적정성 여부 등을 재검토할 수 있다는 조항이 포함돼 있다. 외국 기업의 미국 진출을 어렵게 해 자국 기업을 보호하겠다는 게 트럼프 당선인의 대표 공약이라 멕시코의 대미(對美) 수출 장벽이 높아질 것이란 우려가 자동차 업계에서 나온다.
트럼프 당선인은 전기차에 부여하는 보조금 등 각종 지원과 혜택도 줄이겠다는 뜻도 밝혔다. 미국 내 전기차 판매량이 감소하면 멕시코에 공장을 둔 국내 전기차 부품 제조사는 ‘이중고’를 겪을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트럼프 2기 행정부가 USMCA 재검토에 나서도 관세를 큰 폭으로 올리는 조치는 취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멕시코에는 GM, 포드 등 미국 자동차 제조사들도 진출해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당선인의 선거 유세를 도왔던 일론 머스크가 이끄는 전기차 업체 테슬라도 올해 멕시코에 공장을 지을 계획이었지만, 대선 이후 이를 다시 검토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