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대 무탄소 에너지원으로 소형모듈원자로(SMR)가 부상하는 가운데, 2030년대 상용화를 목표로 하는 4세대(키워드 참조) SMR에 대한 연구·개발이 세계 곳곳에서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국내 기업들은 4세대 SMR을 개발 중인 선도 업체와 협력하면서 글로벌 시장을 공략할 계획이다.

SMR은 전기 출력이 300메가와트(㎿)급 이하인 소형 원전을 말한다. 기존 대형 원전(1000~1500㎿)과 비교하면 출력이 3분의 1에서 5분의 1 수준이지만, 모든 기반 설비를 모듈(기계·가구·건물 등을 구성하는 규격화된 부품)화해 공장에서 대량 생산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4세대 SMR은 3세대 원전과 달리 물이 아닌 가스·소금·액체 금속 등 다양한 물질을 냉각재로 활용하고, 투입되는 핵연료의 안정성 등을 개선한 것이 특징이다.

다만 SMR은 기존 대형 원전과 비교해 연료당 발전량이 적고, 소규모로 건설돼 방사성 폐기물 임시 저장시설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단점도 있다. 또 전력 소비지와 근접한 곳에 설치되는 만큼 기존 대형 원전보다 더 강력한 안전 관련 대책을 확보하는 것도 주요 과제로 꼽힌다.

테라파워(TerraPower)가 상용화를 목표로 개발 중인 소듐냉각고속로(SFR) 나트륨(Natrium) 조감도. / 테라파워 홈페이지 캡처

5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의 테라파워(TerraPower)는 액체 소듐(나트륨)을 냉각재로 사용하는 소듐냉각고속로(SFR)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소듐냉각고속로는 이론상 3세대 경수로 SMR에 비해 안정성이 뛰어나다. 소듐의 끓는점은 약 880℃로 물보다 9배 가까이 높은데, 이 때문에 원자로에서 사고가 발생해 냉각재가 대기로 유출돼도 바로 굳어버려 방사성 물질이 멀리 퍼지지 못하기 때문이다.

테라파워는 지난 6월 미국 와이오밍주에서 소듐냉각고속로 ‘나트륨(Natrium)’ 착공에 돌입했다. 초기 시험 가동을 거쳐 사업성이 확인되면 2030년부터 상업 생산을 시작해 주변 25만가구에 전력을 공급한다는 계획이다. 지난 2022년 SK(034730)SK이노베이션(096770)은 약 3000억원을, HD현대(267250)는 약 425억원을 테라파워에 투자했다.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도 테라파워에 500억원대 투자를 계획하고 있다.

시보그(Seaborg)가 개발 중인 소형용융염 원자로(CMSR) 탑재 부유식 원자력 발전 설비 예상도. / 시보그 홈페이지 캡처

덴마크의 시보그(Seaborg)는 용융염 핵연료를 사용하는 소형용융염 원자로(CMSR)를 개발 중이다. 용융염 원자로는 불소 또는 염소의 화합물을 고온으로 녹인 용융염을 냉각재로 사용한다. 기존 원자로가 고체 상태의 우라늄 핵연료 집합체를 사용하는 반면, 용융염 원자로는 액체 연료염에 우라늄 등을 섞은 액체 연료를 사용한다는 차이가 있다.

액체 연료염은 배관이나 원자로에서 유출되는 즉시 냉각돼 고체로 변하기 때문에 방사능의 대기 유출을 차단할 수 있다. 또 온도가 너무 뜨거워지면 자체적으로 핵분열 속도가 느려져 원전의 노심이 녹는 멜트다운 사고를 원천 차단한다.

시보그는 다수의 국내 기관·기업과 협력 관계를 맺고 있다. 시보그는 작년 4월 용융염 원자로를 적용한 부유식 발전 설비 제품 개발 및 사업화를 위해 한수원, 삼성중공업(010140)과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또 저농축 용융염 원료의 국내 생산시설 개발 타당성 조사를 위해 작년 6월 한국원자력연료, GS건설(006360)과 MOU를 맺었다. 올해 5월에도 한국원자력연구원과 용융염 원자로 개발 협력과 관련한 MOU를 체결했다.

엑스에너지(X-energy)가 개발 중인 고온가스로(HTGR) 노형(왼쪽)과 삼중구조피복입자(TRISO) 연료. / 엑스에너지 홈페이지 캡처

미국의 엑스에너지(X-energy)는 헬륨가스를 냉각재로 사용하는 고온가스로(HTGR)를 개발 중이다. 이 SMR은 우라늄을 세라믹과 흑연으로 감싼 삼중구조피복입자(TRISO) 연료를 사용하는데, 이를 통해 방사성 물질의 누출을 방지하고 고온에서도 연소 안정성을 높였다.

냉각재로 사용되는 헬륨은 반응성이 낮은 비활성 기체로, 매우 높은 온도에서도 안정적인 성질을 유지하기 때문에 열을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 또 고온가스로는 기존 원자로보다 높은 온도에서 운전하기 때문에 가동 중에 발생하는 열로 전력 생산뿐만 아니라 석유화학, 수소 생산, 금속 가공 등 추가적인 용도로도 사용할 수 있다.

엑스에너지는 두산에너빌리티(034020)와 지난 2021년 9월 고온가스로 SMR 설계용역 계약을, 지난해 1월 핵심 기자재 공급 MOU를 체결했다. 올해 2월에는 한전KPS(051600), DL이앤씨(375500)와 SMR 기술·사업 개발을 위한 MOU를 체결했다. 엑스에너지는 최근 아마존으로부터 5억달러(6800억원) 규모의 지분 투자 계약을 유치하기도 했다.

벤자민 라인크(Benjamin Reinke) 엑스에너지 부사장은 “한국은 지난 40여 년간 꾸준히 원전 산업을 영위해 왔고, 최근에는 원전 관련 각종 규제도 완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차세대 SMR을 개발하려는 업체들에 한국은 꼭 필요한 파트너”라고 말했다.

☞원전의 세대 구분

원전은 안전성과 경제성을 기준으로 세대를 구분한다. 1세대는 원자력 발전이 세계 최초로 시작된 지난 1950년대에 지어진 원전으로, 실험용 성격이 컸다. 2세대 원전은 1970~1990년대 보급된 상업용 원자로다. 3세대 원전은 러시아 체르노빌, 미국 스리마일 원전 사고 이후 안정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2000년대 개발돼 현재 널리 쓰이고 있다. 한국형 모델인 APR1400이 대표적이다. 4세대 원전은 물 대신 가스나 용융염 등을 냉각재로 사용해 안정성과 핵연료 사용 주기를 추가로 높였으며, SMR을 중심으로 개발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