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8월 15일, 일본의 항복으로 한국은 광복을 맞았으나 곧바로 분단의 역사가 시작됐다. 5년 뒤인 1950년 북한은 소련제 T34 전차 부대를 이끌고 38선을 침범했다. 당시 우리 군은 보유한 전차(탱크) 한 대도 없이 전선에 나가 북한군과 맞서야 했다.
미국은 M4 전차 등을 지원하며 전선에 나섰지만, 산지가 많은 한반도 전장 환경에서 외국 전차는 제 성능을 발휘하지 못했다. 한국형 전차 개발은 우리 군에 과제로 남았고, 한국은 이후 K1·K2 전차 개발에 잇달아 성공하며 외국에 수출하는 수준까지 기술력을 끌어올렸다.
최초의 한국형 전차인 K1은 1970년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지시로 개발이 추진됐다. 박 전 대통령은 당시 북한이 자체적인 전차 생산 능력을 갖춘 뒤 1600여대의 전차를 보유하고 있다는 정보를 접했고, 1975년 국방부에 한국형 전차 개발을 지시했다.
당시 한국은 전차 면허생산조차 해본 경험이 없었다. 이에 한국은 기존에 운용 중이던 미국의 M48 전차를 추가 도입해 면허생산으로 성능을 개량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국내 연구진은 M48 전차의 기존 가솔린 엔진을 디젤 엔진으로 교체하고, 105㎜ 대전차포와 신형 조준장치·사격통제장치 등을 전차에 부착하는 등 일련의 과정을 거쳐 관련 기술을 흡수했다. 전차를 완전 분해·재조립하며 전차의 구동 원리를 익히기도 했다.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자신감을 얻은 한국은 1979년 미국 크라이슬러 디펜스와 계약을 맺고 최초의 한국형 전차 K1 개발에 돌입했다. 당시 현대정공(현 현대로템(064350)), 국방과학연구소 등 국내 전문가들이 미국을 찾아 개발 과정에 참여하며 시제품을 만들었다.
이후 1981년 기초 설계를 마치고, 1984년 최초의 시제 전차 두 대가 출고됐다. 이후 국내에서 200대 규모의 비공개 양산에 돌입한 K1은 1987년 9월 대중에 처음 공개됐고, 이듬해 있었던 1988년 서울올림픽을 기념해 ‘88전차’라는 애칭을 얻게 된다. K1 전차는 1990년대까지 국내에서 1000대가량이 양산됐다.
한국 지형에 맞춰 만들어진 K1 전차는 1200마력 디젤 엔진을 장착해 평지에서 시속 65㎞, 야지에서 40㎞로 주행할 수 있다. 기동 가능 거리는 550㎞ 수준으로 60도 경사의 산지를 오를 수 있으며, 도하 키트를 장착하면 최대 2.2m 수심의 강을 건널 수 있다. 무장으로는 105㎜ 강선포, 부무장으로 7.65㎜ 공축기관총 등이 탑재됐다. 이후 K1 전차는 화력과 사거리를 개선한 K1A1, 디지털 전장관리체계와 피아식별장치 등을 탑재한 K1A2 등으로 개량해 지금도 육군 주력 전차로 활용되고 있다.
한국의 전차 기술은 K2 전차 개발로 다시 한번 도약한다. 1998년 미래 전장 환경에 적합한 새 전차의 필요성에 따라 탐색 개발이 시작된 K2 전차는 2007년 3월 시제품 출고, 2014년 7월 양산을 거쳐 군에 실전 배치됐다.
K2 전차는 2019년 2차 양산분부터 HD현대인프라코어(042670)가 개발한 1500마력 고출력 엔진이 탑재됐다. 최대 속도는 평지 70㎞/h, 야지 50㎞/h로 높아졌고, 도하 가능 수심도 4.1m로 깊어졌다.
K2 전차의 주무장은 120㎜ 활강포로 최대 40발을 적재할 수 있고, 부무장으로 12.7㎜, 7.62㎜ 기관총을 탑재했다. 자동장전 장치로 승무원이 없어도 탄약을 빠르고 안전하게 장전할 수 있고, 목표물 자동 추적·탄도 보정 기능이 달린 4세대 사격통제장치도 설치됐다. 서스펜션을 통해 차체의 앞뒤, 좌우 높이를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다.
K2는 미국의 에이브럼스, 독일 레오파르트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지난 2020년 미국 군사전문매체 밀리터리매거진이 뽑은 세계 전차 순위 1위에 오르기도 했다.
K2 전차는 지난 2022년 폴란드에 첫 완제품 수출을 달성하는 쾌거를 이뤘다. K2 전차는 타국 전차들보다 가격 대비 성능, 기동성이 뛰어나 현지에서 좋은 평가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로템은 폴란드 군의 의견을 반영해 적군의 대전차 무기를 탐지·파괴하는 하드킬 능동방호장치(APS), 원격사격통제체계(RCWS) 등을 탑재하며 성능을 추가 개량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