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003490)이 미국 항공기 제작사 보잉으로부터 최대 30조원에 달하는 항공기를 구입하기로 한건 아시아나항공(020560) 합병을 위한 포석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은 2021년부터 14개국의 기업결합 심사를 진행하고 있는데, 미국 경쟁당국의 승인만 남겨두고 있다.

조원태 한진(002320)그룹 회장과 스테퍼니 포프 보잉 상용기부문 사장은 지난 22일(현지시각) 영국 판버러 에어쇼 현장에서 B777-9 20대, B787-10 30대(예비 발주 10대 포함) 도입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맺었다.

대한항공이 운용할 보잉 B777-9(아래), B787-10 드림라이너. / 대한항공 제공

앞서 조 회장은 지난달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서 7월 중 보잉으로부터 항공기 30대를 구매할 계획이라고 밝혔는데, MOU 대수는 이보다 20대나 많았다.

대한항공은 계약 총액을 밝히지 않았다. 보잉에 따르면 B777-9의 대당 가격은 4억4220만달러(약 6140억원), B787-10은 3억610만달러(약 4250억원)다. 업계는 추가 옵션 등을 고려했을 때 이번 계약 규모가 30조원에 달할 것으로 본다.

지난달 밝힌 보잉 항공기 30대의 계약 총액은 약 15조원으로 추정됐는데, 한 달 만에 계약 규모가 배로 늘어난 것이다. 이는 회사 사상 최대 규모다. 이전 기록은 지난 3월 에어버스로부터 33대를 약 19조원에 들여오기로 한 것이었다.

항공업계는 이번 계약이 아시아나항공 합병을 고려한 것으로 해석한다. 2021년 1월부터 시작한 두 회사의 기업결합 심사가 미국만 남겨놓고 있어 미국 기업과 협력을 다지면 합병 성사에 우호적인 분위기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조원태(오른쪽) 한진그룹 회장과 스테파니 포프 보잉 상용기 부문 사장은 지난 22일(현지시각) 영국 판버러 에어쇼 현장에서 B777-9 30대, B787-10 20대를 도입하는 내용의 MOU를 맺었다. / 대한항공 제공

미국은 경쟁당국의 기업결합 ‘승인’ 절차를 따로 운영하지 않는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가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기업결합에 대한 최종 승인 결론을 내린 뒤 2~3개월 안에 미국 법무부(DOJ)가 기업결합 제한 소송을 제기하지 않으면 승인으로 간주한다. EC는 오는 8월 중 두 회사 합병과 관련한 최종 승인 결론을 내릴 전망이다.

대한항공은 선대 조양호 회장 시절인 2011년 6월 캐나다 항공기 제작사 봄바디어와 대당 6500만달러(약 900억원)인 항공기를 최대 30대(확정 10대, 예비 20대) 구매하는 의향서(LOI)를 체결했다. 당시는 2018년 동계올림픽 개최지 선정 투표를 한 달 앞둔 시점으로 조양호 회장은 평창 올림픽 유치를 위해 봄바디어 항공기를 구매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대한항공은 회사의 중요한 변곡점에서 대량 구매 등으로 난관을 돌파한 경험이 있다”고 했다. 대한항공 측은 “보잉과의 계약은 DOJ의 기업결합 심사 절차와 별개로 첨단 항공기 선점을 통한 기단 현대화 조치의 일환”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