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동해 포항 앞바다에 최대 140억배럴(Bbl) 규모의 석유·천연가스가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발표하면서, 향후 진행될 탐사 시추(Exploration Drilling) 사업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탐사 시추란 석유 퇴적물 등을 탐색할 목적으로 대형 굴삭 장비를 이용해 땅속 깊이 구멍을 파는 작업을 뜻한다. 이는 고도의 기술력과 전문 장비 등을 필요로 해 ‘석유 공룡’으로 불리는 일부 외국 기업이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4일 대한석유협회와 업계에 따르면 석유 탐사가 시작된 185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의 석유 개발은 석유 분출 장소 또는 현재 분출하고 있는 장소 주변을 중점적으로 굴착하는 형태였다. 그러나 20세기 말 탐사 장비가 발달하고 슈퍼컴퓨터가 등장하면서 지질 구조를 미리 파악한 뒤 시추를 시도하는 방식이 자리 잡았다. 신기술 덕분에 심해(深海) 유전 또는 생산비가 겨우 나올 만한 한계유전도 점차 개발되기 시작했다.
석유 탐사는 지표지질조사, 물리탐사, 시추탐사 등의 과정을 거친다. 지표지질조사 단계에선 항공기, 인공위성 등으로 지형을 파악하고 지질 구조를 탐사한다. 물리탐사 단계에서는 탄성파를 발사해 되돌아오는 반사파를 분석하면서 석유 매장 여부와 규모를 가늠한다.
“포항 영일만 앞바다 석유·가스 추정 매장량이 최소 35억Bbl에서 최대 140억Bbl이며 가스 75%·석유 25% 수준”이라는 정부의 발표 역시 이런 조사 과정을 거쳐 나왔다. 가스는 우리나라가 최대 29년, 석유는 최대 4년을 쓸 수 있는 양이다.
이후 시추탐사(탐사 시추) 단계에서는 ‘비트(bit)’로 불리는 회전용 굴삭기를 이용해 직접 지하에 구멍을 뚫어 석유의 존재를 확인한다. 이때 지하 수천m까지 하나의 직경으로 시추하면 시추공(試錐孔)이 무너질 수 있기 때문에, 시추를 하면서 동시에 시추공을 보호하기 위해 외곽에 강관을 설치하는 ‘케이싱’ 작업과 시멘트로 암석과 파이프를 붙여주는 ‘시멘팅’ 작업도 함께 진행한다. 결과적으로 석유 시추공의 단면 형태는 망원경을 거꾸로 세워둔 모양이 된다.
석유 시추에 사용되는 시추선의 길이는 200m, 폭은 약 40m에 달할 정도로 거대하다. 시추공의 직경도 지표면에서는 약 66㎝로 넓으나, 지하로 뚫고 내려가면서 20㎝까지 좁아진다. 기후와 암반 조건에 따라 다르지만, 약 70m를 파 내려갈 때마다 30분이 걸린다. 과거에는 지상에서 수직 방향으로 파내려가는 수직정 시추만 가능했지만, 시추 방향을 제어하는 기술이 보급되면서 비스듬하게 내려가는 경사정 시추나 지하에서 수평 방향으로 파내는 수평정 시추도 가능해졌다.
석유는 일반적으로 지하 1~4㎞ 사이에서, 가스층은 6㎞ 이상 깊이에서 발견된다. 시추 비용은 전체 석유 개발비용의 상당 부분(50~60%)을 차지하는데, 시추 지역에 따라 비용은 크게 달라진다. 정부가 밝힌 포항 영일만 앞바다 지역의 수심은 1㎞가 넘어, 1공당 1000억원 이상의 비용이 들 것으로 석유공사는 추산했다.
석유 탐사·개발에는 큰 비용과 전문 장비, 기술력이 요구되기 때문에 엑손모빌(ExxonMobil), 쉘(Shell), BP(British Petroleum), 쉐브론(Chevron), 토탈에너지스(TotalEnergies) 등 글로벌 메이저 기업들이 관련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달 초 노르웨이의 시드릴(Seadrill) 사와 시추선 사용 계약을 맺었다. 만약 충분한 석유 매장량이 확인되고, 유전·가스전 개발 사업이 본격화하면 국내 업체들이 참여할 수 있는 길도 열릴 전망이다.
정부가 자문한 심해 기술평가 전문기업 액트지오사가 추정한 동해 8광구와 6-1광구 지역의 시추 성공률은 20%로 낮다. 확률상 5번의 탐사 시추가 이뤄져야 유의미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지난 2004년 상업 생산을 시작한 동해 가스전의 경우 탐사 시추를 10번 실패하고 11번째에 성공했다. 정부는 연말까지 동해 8광구 및 6-1광구 1차 탐사 시추에 착수할 계획이며, 첫 결과는 내년 상반기에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