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서열 2위 SK그룹의 최태원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소송 항소심 판결의 파장이 이어지고 있다.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1조3808억1700만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이 확정되면 최 회장은 SK그룹의 지주회사 지분을 상당 부분 처분할 수밖에 없어 경영권에도 많은 변화가 예상된다. 판결의 내용 및 판결이 미칠 영향을 살펴본다. [편집자주]

최태원 SK(034730)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소송 항소심에서 재판부는 최 회장이 보유한 SK㈜ 주식도 재산 분할 대상에 포함했다. 재판부가 SK㈜ 주식을 재산 분할 대상에 포함한 이유는 최태원 회장이 대한텔레콤 지분을 인수할 때 사용한 자금에 노 관장의 아버지인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 섞여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대한텔레콤 주식은 이후 인수·합병, 액면분할, 증여, 매각 등을 거치면서 SK㈜ 주식이 됐다.

최 회장은 1994년 대한텔레콤 지분 70%를 매입할 때 선친 최종현 선대회장이 자신에게 증여한 자금 2억8000만원이 사용됐다고 주장했다. 노 관장 측은 노 전 대통령이 1991년쯤 최 선대회장에게 300억원을 줬기 때문에 최 회장이 대한텔레콤 지분을 매입한 자금에 이 돈이 섞여 있다고 주장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조선 DB

최 선대회장은 1994년 5월 2억8690만원을 은행에서 인출했고, 최 회장은 그해 10월 말 비슷한 금액을 은행에 입금했다. 최 회장은 약 20일 뒤 이 돈을 인출했고 같은 날 대한텔레콤 주식 70만주를 2억8000만원에 취득했다.

최 회장은 대한텔레콤 주식을 매입한 돈이 선대회장에게서 받은 돈이기 때문에 SK㈜ 주식은 특유재산(부부 중 한쪽이 결혼하기 전부터 가진 고유 재산이나 결혼 중 자기 명의로 상속·증여를 통해 취득한 재산)이라고 주장했다. 최 회장은 1994년 대한텔레콤 주식 매수자금으로 2억8000만원을 증여 받았다며 1997년 12월 과세관청에 신고하고 증여세와 가산세도 납부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최 선대회장 은행 계좌에서 돈을 인출한 시점과 최 회장 은행 계좌에 돈을 입금한 시점이 5개월 차이가 나 최 회장이 대한텔레콤 주식 70만주를 직접 증여 받은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반면 노 전 대통령이 최 선대회장에게 300억원을 줬다는 노 관장의 주장은 인정했는데, 그 근거로 선경건설이 1991년 혹은 1992년에 노 전 대통령 측에 300억원의 약속어음을 발행한 점을 들었다. 약속어음은 선경건설이 노 전 대통령 측에 돈을 주겠다는 의미인데, 거꾸로 노 전 대통령이 최 선대회장에게 돈을 줬다는 증거가 된 것이다. 재판부는 노 전 대통령이 최 선대회장에게 금전적 지원을 한 다음 증빙의 의미로 받았다고 봤다.

최 회장 측은 노 전 대통령이 퇴임 이후 활동비를 요구할 때 돈을 제공하겠다는 의미로 어음을 발행했다고 주장했으나 재판부는 노 전 대통령이 퇴임 후 활동비로 사용할 수 있는 수천억원의 자금이 이미 조성된 상황이라며 최 회장 측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노 전 대통령의 회고록을 보면 1992년에는 총선과 대선이 있었던 해라 자금이 많이 필요했던 시기였다. 당시엔 대통령이 기업에게서 ‘정치 자금’을 걷어 선거에 사용하는 게 관행이었다.

‘노태우 회고록’에 따르면 김영삼 당시 민자당 총재는 노 전 대통령에게 “막대한 자금이 소요될 텐데 저로서는 그 많은 자금을 조성할 능력이 없으므로 대통령께서 알아서 해주십시오”라고 부탁했다. 노 전 대통령은 그러겠다고 약속하고 기업인들에게 협조를 요청했다. 노 전 대통령은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선거자금으로 1400억원을 지원 받았고 김영삼 전 대통령에게 3000억원을 지원했다고 적었다.

재판부는 노 전 대통령의 부인 김옥숙 여사가 제출한 메모도 노 관장의 주장을 뒷받침한다고 봤다. 김 여사가 제출한 두 장의 메모에는 각각 ‘선경 300억’이란 글자가 적혀 있는데 메모 시점이 ‘1998년 4월 1일’, ‘1999년 2월 12일’이다.

이 때문에 메모에 적힌 대로 노 전 대통령 측이 1998년 4월 1일, 1999년 2월 12일 당시 선경(현 SK)에 맡긴 돈이 있다고 해도, 이 메모가 1991년에 노 전 대통령이 최 선대회장에게 300억원을 줬다는 증거로 보긴 어렵다는 시각도 있다.

최 회장 측은 항소심 판결이 나온 직후 “오로지 모호한 추측만을 근거로 이루어진 판단이라 전혀 납득할 수가 없다”며 강하게 반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