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불안, 중국의 경기부양책 등으로 원자재 가격이 치솟고 있다. 완성차, 조선 등 제조업체는 원자잿값이 올라 생산 비용 증가를 우려하지만, 원자재 가격 상승분을 제품 가격에 반영할 수 있는 전선, 배터리 소재업체는 수익 증대를 기대하고 있다. 원자재를 직접 생산하거나 조달하는 비철금속업체, 종합상사도 수혜가 예상된다.

20일(현지 시각) 뉴욕상품거래소(COMEX)에서 금 현물 가격은 장중 온스(1온스는 28.349523g)당 2440.59달러로 지난달 세운 장중 최고 기록을 넘었다. 같은 날 런던금속거래소(LME)에서 구리(동·銅) 가격은 1톤(t)당 1만857달러로 전 거래일보다 1.7% 상승하며 최고치를 경신했다. 금, 구리 가격이 뛰면서 에너지, 금속 등 24개 원자재 가격을 반영하는 블룸버그 원자재 현물지수는 16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그래픽=손민균

대부분의 원자재를 수입하는 제조업계는 원자재 가격이 오르면 원가 부담이 늘어 수익성에 타격을 입는다. 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가 이달 초 전국 2230개 제조업체를 대상으로 투자 동향을 조사한 결과, 3곳 중 1곳은 올해 상반기 투자를 기존 계획보다 축소 또는 미루고 있다고 답했다. 기업들은 가장 큰 투자 걸림돌로 불안정한 원자재 가격을 꼽았다.

반면 원자재 가격 상승분을 제품 판매가에 반영할 수 있는 전선, 배터리 소재 등 일부 업계는 매출 증대 효과가 예상된다. 전선업체들은 구릿값 상승분을 판매 가격에 적용하는 에스컬레이션(물가 변동과 계약 금액을 연동하는 제도) 조항을 따르는 관행이 있다. 구리 재고자산의 평가가치가 오르는 것도 호재다. 전기차 수요 둔화로 부침을 겪고 있는 양극재 업계는 리튬, 니켈 가격 반등과 함께 실적 개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해외에서 원자재를 생산하고 조달하는 비철금속 업체나 종합상사도 원자잿값 상승이 실적을 끌어올리는 요인이 될 수 있다. 비철금속을 제련·가공해서 판매하는 업체는 원자재 가격 상승의 직접적인 수혜를 입는다. 국내 주요 종합상사는 해외 가스전, 광산 등을 보유하고 있는데 원자재를 중개(트레이딩)하면서 수수료 이익을 얻고 있다.

원자재 가격은 당분간 강세를 보일 것이란 전망이 많다. 대표적인 안전자산인 금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기준금리를 인하할 가능성이 부각되며 수요가 몰리고 있다. 배전·송전망에 쓰이는 구리는 인공지능(AI) 붐으로 전력 사용량이 급증하면서 공급이 부족한 상황이다. 사모펀드 운용사 칼라일 그룹의 제프 커리 에너지 부문 최고전략책임자는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이 구리 가격을 톤당 최대 1만5000달러까지 끌어올릴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