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중심으로 변압기(전압을 바꾸는 기기) 수요가 커지면서 관련 제품을 생산하는 중견·중소기업도 호황을 누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전력을 많이 쓰는 생성형 인공지능(AI)이 발달하면 변압기 수요는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본다. 변압기는 고전압을 저전압으로 변환해 가정이나 사업장에서 쓸 수 있게 하거나 반대로 고전압으로 바꿔 먼 거리로 전송한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변압기만 만드는 제룡전기(033100)는 지난해 매출 1839억원, 영업이익 702억원을 기록했다. 전년보다 매출은 114%, 영업이익은 339% 늘었다.

그래픽=손민균

국내 시장은 건설경기 악화 등으로 변압기 수요가 주춤하지만, 미국은 노후화된 전력망을 교체하려는 수요가 많다. 이 때문에 제룡전기의 지난해 매출 가운데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82%에 달했다. 지난해 말 기준 수주잔고는 2572억원으로 올해 실적은 더 개선될 것으로 회사 측은 기대하고 있다.

변압기 외에 저압부터 초고압까지 다양한 전선을 생산하는 종합 중전기(중량이 큰 전기기구) 기업 일진전기(103590)도 지난해 매출 1조2467억원을 올리며 전년보다 7% 성장했다. 영업이익은 608억원으로 93% 늘었다. 지난해 수익성이 좋은 변압기를 중심으로 중전기 매출이 늘면서 영업이익이 개선됐다.

중전기, 전선 모두 가동률이 한계에 도달하면서 일진전기는 1000억원 상당의 자금을 확보해 증설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13억달러(약 1조7200억원)인 수주잔고 중 78%는 해외(전선 71%, 변압기 84%)에서 나왔다.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에 있는 산일전기 전경. 산일전기는 매출 호조에 힘입어 올해 코스피 상장을 추진한다./산일전기 제공

비상장 변압기 중소기업 가운데 2023년 감사보고서를 제출한 KP일렉트릭은 지난해 매출이 1001억원으로 전년(728억원)보다 37% 늘었다고 밝혔다. 업계 1위인 산일전기는 실적 호조에 힘입어 올해 유가증권시장 입성을 추진하고 있다. 2022년 매출은 1279억원으로 전년(648억원)보다 두 배가량 늘어났다.

업계에선 이런 변압기 호황이 장기화할 수 있다고 본다. 손현정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미국 중심의 공급망 재편 분위기에 따라 미국 내 전력기기 교체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며 “여기에 AI 발달로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가 증가하면서 관련 수요는 장기적으로 상승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글로벌 데이터센터의 전력 사용량은 2022년 460테라와트시(TWh)에서 2026년 620~1050TWh로 늘어날 전망이다. 모건스탠리는 생성형 AI가 2027년까지 글로벌 전력 수요의 75% 이상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