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유 운반선이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에 이어 한국 조선업을 먹여 살릴 선종으로 자리 잡고 있다. 20일 영국 조선·해운 시황분석업체 클락슨리서치 따르면, 최근 원유 운반선 등 유조선(탱커)의 중고가격 지수는 지난해 초 대비 16% 상승하며 2008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중고 선박 중에서도 한국 조선사의 주력 선종 중 하나인 30만DWT(Deadweight Tonnage·배에 적재할 수 있는 화물의 최대량)급 VLCC의 상승세가 가파르다. 건조한지 5년이 된 VLCC의 지난 15일 기준 선가는 지난해 말 대비 8% 상승한 1억1300만달러(약 1512억원)로 신조선가(새로 짓는 배의 가격)에 육박하고 있다.

HD한국조선해양이 건조한 초대형 원유운반선(VLCC)./HD한국조선해양 제공

클락슨리서치는 올해 1~2월 두 달간 중고 탱커의 거래량이 2700만DWT, 100억달러를 기록하며 사상 최고 수준이라고 덧붙였다. 지난해 중고 탱커는 510억달러(1억3100만DWT) 어치가 거래됐다.

중고선 시세가 오르면서 새 배 가격도 오르고 있다. 지난 12일 HD한국조선해양(009540)이 수주한 VLCC는 척당 1억3000만달러(약 1740억원)를 기록하며 역대 최고가를 기록했다.

한국 조선업계는 지난달 하순 이후 세 차례에 걸쳐 총 8척의 VLCC를 수주했는데, 매 계약 때마다 최고선가를 다시 쓰고 있다. 지난달 23일 한화오션(042660) 수주분 선가는 척당 1억2800만달러, 지난달 28일 HD한국조선해양 수주분 선가는 1억2900만달러였다.

새 VLCC 계약은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올해 들어 지난 15일까지 전 세계에서 계약된 VLCC는 총 23척으로 지난 2022~2023년의 계약분 합계(21척)보다 많았다.

탱커 가격은 환경 규제를 충족하는 선박이 세계적으로 부족한 가운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원유를 운반하는 경로가 크게 변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러시아나 이란 등 경제 제재 대상국의 원유를 운반하는 ‘그림자 선단’의 배들이 기존 탱커 시장과 분리되면서 공급이 줄었다는 분석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