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방문한 네덜란드 로테르담 마스블락테 APM터미널에서는 중국과 말레이시아에서 화물을 싣고 온 2만TEU(1TEU는 6m 컨테이너 1개)급 초대형 컨테이너선 무르시아머스크(Murcia Maersk)호의 하역작업이 한창이었지만, 쥐 죽은 듯 조용했다. 작업 중인 터미널에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탑승부가 없는 초대형 크레인(Quay Crane)이 배에서 컨테이너를 내리면, 이를 무인 차량(AGV)이 받아 야적장까지 옮겼다. 야적장에 쌓인 컨테이너를 트럭에 싣는 크레인(Transfer Crane)도 자동으로 움직였다. 무르시아머스크호는 입항 36시간 만에 상하역 작업을 마치고 다음 기항지인 독일 브레머하펜으로 떠났다.

지난 8일 머스크 소속 선박이 로테르담항 APM터미널에서 하역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로테르담(네덜란드)=박정엽 기자

로테르담은 전 세계 항만 중에서 디지털화와 탈탄소화가 가장 빠르게 이뤄지는 곳이다. 유럽 최대의 컨테이너항이면서 셸(SHELL), 엑손모빌(EXXON MOBIL) 등이 자리 잡은 초대형 석유화학 생산기지이기도 하다. 한국의 부산항과 울산항의 성격을 모두 갖고 있어 한국 항만 당국 및 물류·에너지 업계의 주요 벤치마킹 대상이다.

로테르담 항만청은 단순한 인프라를 넘어 혁신의 주체 역할도 하고 있다. 진규호 부산항만공사(BPA) 경영본부장은 "로테르담은 항만 디지털화, 탄소 중립, 수송 체계의 비중 등에서 배울 점이 많다"고 말했다.

로테르담 항만청은 자체 보유한 소프트웨어 개발팀이 기항 최적화 정보 애플리케이션(앱), 컨테이너 추적 앱 등을 직접 개발해 경쟁 항만에 판매한다. 아시아 마틴 반 오스턴(Maarten van Oosten) 로테르담 항만청 홍보담당은 "독일 함부르크나 벨기에 앤트워프 등 인근 항구에서 우리가 만든 앱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에너지 기업 셸(SHELL)이 네덜란드 로테르담 마스블락테2에 건설중인 수소 생산 시설 홀란트 하이드로젠1. /로테르담(네덜란드)=박정엽 기자

로테르담은 미래 에너지 운반체로 주목받는 수소의 생산·유통 허브로 변신 중이다. 지난 5일 방문한 마스블락테에서는 에너지 기업 셸(SHELL)이 10억유로(약 1조4400억원)를 투자한 200㎿(전해조 용량 기준) 규모의 수소 생산 시설 홀란드 하이드로젠 I (Holland Hydrogen I)의 건설이 한창이었다.

셸은 내년부터 이 시설을 통해 매일 약 60톤(t)의 그린수소를 생산해 정유 공정의 탄소 배출을 줄인다는 구상이다. 수소 생산에 필요한 전력은 셸이 건설 중인 해상풍력 발전시설(Hollandse Kust Noord)로 충당한다.

로테르담의 그린수소 생산 규모는 오는 2030년까지 독일 유니퍼(UNIPER) 등의 에너지 기업이 건설할 수소 공장과 함께 총 1GW 규모로 늘어날 계획이다. 신진선 부산항만공사 네덜란드법인장은 "로테르담은 주요 글로벌 에너지 기업 및 선사 등과 함께 캐나다, 호주 등에 진출해 추가로 필요한 수소를 생산하는 시설과 수소 터미널을 확보하려고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