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산 무기가 폴란드 수출을 계기로 동유럽에 발을 들이자, 유럽 방산 업체들이 기존 시장을 사수하기 위해 생산 능력과 성능을 높이고 있다. 업계에서는 한국 방산이 유럽 내 입지를 키우기 위해선 폴란드와의 2차 계약, 루마니아 K9 수출 성사가 더욱 중요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22일 로이터 등 외신에 따르면 독일 라인메탈(Rheinmetall AG)은 최근 우크라이나에 탄약 생산공장을 신설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라인메탈은 신설될 공장에서 155㎜ 포탄을 생산할 계획이다. 이는 자사의 PzH2000을 포함해 서방권의 자주포가 널리 채용하는 구경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012450)의 K9도 같은 구경을 쓴다.
현재는 유럽 내 탄약 수요가 크지만, 장기적으로 독일의 탄약 생산 능력이 확대되면 한국 업체의 수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현재 국내에서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장약, 풍산(103140)이 탄두를 생산해 155㎜ 포탄을 만들고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지난해 11월 영국 BAE시스템즈에 155㎜ 포탄의 모듈화 장약(MCS)을 공급하는 1759억원 규모의 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라인메탈은 지난해 현대로템(064350)의 K2 전차를 밀어내고 노르웨이 전차 사업을 따내기도 했다. 당시 K2 전차는 현지 평가 점수가 더 우세했지만, 노르웨이는 같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소속 국가인 독일의 손을 들어줬다.
라인메탈은 올해부터 우크라이나에서 푹스(Fuchs) 장갑차와 링스(Lynx) 보병전투차량 등도 생산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지난해에도 헝가리에 링스 생산 공장을 준공했다. 링스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호주에 수출한 레드백(redback) 장갑차와 경쟁했던 기종이다. 생산 능력을 확대하면 단가가 하락할 가능성이 높아, 레드백의 유럽 진출을 타진하던 한화에어로스페이스에는 비우호적인 상황이다.
방산 업계 관계자는 “한국이 폴란드에 전차와 자주포 등을 대량 수출한 것은 당시 유럽 국가의 생산 능력이 부족했던 영향이 컸다”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유럽 내 무기 수요가 급증했고, 이 빈틈을 한국에 뺏긴 독일이 시장을 다시 뺏어오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라고 말했다.
최근 여러 건을 수주한 프랑스의 라팔(Rafale) 전투기 역시 성능 개량에 힘쓰고 있다. 라팔은 향후 같은 4.5세대 전투기로 분류되는 한국의 KF-21과 세계 곳곳에서 경쟁할 기종으로 평가된다.
라팔은 지난 2000년 이후 프랑스군의 주력 전투기로 사용돼 왔지만, 성능과 가격 문제로 미국 전투기에 밀려 수주전에서 잇단 고배를 마셨다. 그러나 2016년 인도를 시작으로 이집트, 카타르, 그리스, 크로아티아, 아랍에미리트, 인도네시아 등에서 수출 계약을 체결하며 규모의 경제를 이뤄냈다. 최근에도 신형 적외선 탐지·추적 장치 등을 탑재한 개량형인 F4 버전을 만드는 등 성능을 높이고 있다.
구형 AS-90 자주포 116문을 신형 기종으로 교체하는 사업을 진행 중인 영국은 지난해 3월 스웨덴의 아처(Archer) 자주포 14문을 임시 도입한다고 밝혔다. 영국 자주포 사업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K9, 독일 KMW의 RCH-155 등도 참전한 상태다.
영국이 일부 도입한 아처 자주포는 자국 기업 BAE시스템즈가 차체를 생산해 자국 방위산업을 우선 보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향후 수주 과정에서도 자국 업체를 채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지점이다.
업계에서는 한국 방산의 유럽 추가 진출을 위해선 현재 남은 계약부터 성공적으로 마무리해야 한다고 본다. 방종관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전력개발센터장은 “한국 방위산업은 동유럽에서 교두보를 확보해야만 이를 기반으로 서유럽과 미국까지 진출이 가능하다. 이런 관점에서 폴란드 2차 이행계약과 루마니아 방산 수출 성공을 위해 더욱 집중해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