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이른바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를 해소하기 위해 ‘밸류업(가치 제고) 프로그램’을 준비 중인 가운데, 삼성·SK(034730)·현대차(005380)·한화(000880) 등 주요 기업들이 자사주 소각과 배당 확대 등 주주 가치 제고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밸류업 프로그램은 기업지배구조 보고서에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넣으면 공시 우수법인 선정 시 가점을 부여하고, 주주가치가 높은 기업으로 구성된 신규지수 ETF를 도입하는 게 골자다. 여기에 주주환원을 촉진할 수 있는 세제 인센티브 기본 방향도 담길 예정이다.
21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은 정부의 밸류업 프로그램 시행에 맞춰 자사주 소각을 공식화했다. 이주경 삼성생명(032830) 경영지원실장은 지난 20일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을 통해 “밸류업 프로그램 취지에 적극적으로 동감하고 있다. 프로그램이 구체화하면 주주가순자산비율(PBR), 자기자본이익율(ROE) 제고를 위해 다양한 방안을 추가로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삼성생명은 시가총액이 보유 자산보다 적은 PBR 1배 미만 기업으로 대표적인 저평가주로 꼽혔다. 지난 14일엔 삼성물산(028260)도 1조원 규모의 자사주 소각을 결정했다. 삼성전자(005930)는 2024년부터 2026년까지 3년간 발생하는 잉여 현금 흐름의 50%를 환원하고 연간 9조8000억원의 배당금을 지급한다는 계획이다.
현대차(005380)그룹은 지속해서 자사주 소각을 시행하고 있다. 기아(000270)는 오는 3월 중순까지 5000억원 규모의 자사주를 매입한 뒤 소각하겠다고 밝혔다. 현대차는 전체 지분의 약 4%에 해당하는 자사주를 보유 중인데, 매년 1%씩 3년간 소각한다는 계획이다.
정부가 밸류업 프로그램을 발표한 지난달 17일 이후 지난 20일까지 외국인 투자자가 가장 많이 순매수한 종목 1위는 현대차(1조4852억원)였고 기아도 5468억원으로 4위에 올랐다. 삼성물산(5300억원))과 삼성물산우(4039억원)도 각각 5위, 6위에 올랐다.
SK그룹도 적극적으로 주주환원 정책을 펼치고 있다. SK이노베이션(096770)은 약 8000억원의 자사주 소각을 결의했다. SK네트웍스(001740)는 정기 배당액을 높이고 자사주 6.1%를 소각하기로 했다. SK텔레콤(017670), SK가스(018670), ㈜SK도 배당급 규모를 확대했다.
한화는 한화생명(088350)을 시작으로 자사주 소각 등을 검토하고 있다. 한화생명은 정부의 밸류업 프로그램 발표 후 자사주 소각 등을 포함한 종합적인 주주환원 방안을 고민하겠다는 입장이다.
주주환원 정책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자 창사 이래 처음으로 자사주 소각에 나서는 기업도 나오고 있다. 에스엠(041510)은 처음으로 자사주 23만1379주를 소각했고 HD현대건설기계(267270)도 출범 이후 처음으로 자사주 소각에 나선다.
업계에서는 LG(003550), LS(006260) 그룹도 자금 여력이 충분해 자사주 취득 및 소각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으로 본다. LS는 작년 11월부터 12만5000주의 자사주 취득을 진행 중이다. 앞서 지난 2022년에는 30만여주를 매입한 바 있다. 최관순 SK증권 애널리스트는 “이번 자사주 매입을 완료하면 LS의 자사주 비중은 15.1%까지 늘어날 전망”이라며 “최근 정부 정책에 따라 향후 보유 자사주에 대한 소각을 검토할 유인이 있다”고 말했다.
재계 관계자는 “최근 주요 기업은 2차 전지, 반도체, 자동차, 인공지능(AI) 등의 분야에서 조단위의 투자를 하고 있다. 자사주는 사실상 경영권 방어 목적으로 활용되는 경우가 많은데, 세액공제 등 실질적인 혜택이 있어야 소각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