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 경쟁 당국인 EU 집행위원회(EC)가 대한항공(003490)아시아나항공(020560)의 기업결합을 조건부 승인하면서 두 회사의 합병이 9부 능선을 넘었다. 이제 미국 법무부(DOJ)의 최종 승인만 남았다. 하지만 DOJ 역시 미주노선에 대한 독점 우려를 제기할 가능성이 있어 대한항공은 끝까지 긴장을 놓지 못하고 있다. 아시아나항공 화물사업 매각 절차 역시 순조로운 마무리가 가능할지 관심이다.

13일 항공업계와 대한항공 등에 따르면, EC는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합병을 승인한다고 통보했다. EC는 "대한항공이 시정조치안에 담긴 내용을 완전히 이행한다는 조건 아래 승인한다"라고 밝혔다. 대한항공은 이에 대해 "엄격한 기준으로 심사를 진행하고 있는 EU 경쟁 당국의 승인을 얻어냈다"라며 "기업결합심사가 완결을 눈앞에 뒀다"라고 전했다.

앞서 대한항공은 아시아나항공의 화물사업부 분리 매각안과 유럽 4개 중복 노선을 국내 다른 항공사에 넘기는 시정조치안을 EU에 제출했다. 국내 저비용항공사(LCC) 가운데 장거리 운항 경험이 있는 티웨이항공(091810)이 유럽노선을 이관받을 계획이다.

대한항공 항공기(위)와 아시아나항공 항공기(아래)/각 사 제공

◇ 고비 넘긴 '메가캐리어' 탄생

아시아나항공이 매물로 나왔던 2019년부터 4년 넘게 지지부진했던 두 FSC(대형항공사)의 합병은 이제 미국의 승인만 남겨 놓고 있다. 대한항공은 지난달 말 주요 14개국 가운데 12번째 국가였던 일본의 승인을 받았고 이날 13번째인 EU의 조건부 승인을 받았다.

항공업계는 대한항공이 마지막까지 방심할 수 없다고 본다. 지난해 DOJ는 두 회사가 합병하면 화물 사업과 함께 양사가 운항하는 미주노선 13개 가운데 샌프란시스코, 호놀룰루, 뉴욕, 로스앤젤레스, 시애틀 등 5개 노선의 독점 우려를 제기한 바 있다. 작년에는 DOJ가 경쟁 제한을 이유로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막기 위한 소송을 검토한다는 현지 언론의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아시아나항공과 공동운항해 온 미국의 유나이티드항공은 노선의 경쟁력 악화를 우려해 기업결합에 반대하고 있다.

대한항공은 한국-미주 5개 여객노선(샌프란시스코·호놀룰루·뉴욕·LA·시애틀)을 국내 항공사 에어프레미아에 이관하는 방안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에어프레미아의 기재가 5대뿐인 것으로 고려해 대한항공은 기재를 대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다만 대한항공과 미국 델타항공 조인트벤처(JV)의 미주노선 점유율 대비 에어프레미아의 점유율이 현저히 낮아 DOJ가 대한항공의 제시안을 받아들일지 관건이다.

현재 미국은 2단계 심사를 진행 중이다. 대한항공은 6월 말경 심사 절차가 마무리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 아시아나항공 화물 사업 매각 순조로울까

대한항공은 상반기 내 DOJ의 승인을 받고 시정안에 담겼던 구체적인 항목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핵심은 아시아나항공의 화물 사업 매각이다. EC가 조건부 승인을 했기 때문에, 아시아나항공 화물 사업이 매각되지 않으면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된다.

아시아나항공의 화물사업부 가격은 보유 화물기 등을 고려하면 5000억~7000억원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아시아나항공 화물기는 총 11대이며 평균 연식은 20~25년으로 높은 편이다. 여기에 부채비용을 떠안으면 인수금액이 1조원을 웃돌 전망이다.

항공업계에서는 제주항공(089590), 에어인천, 이스타항공, 에어프레미아 등이 아시아나항공 화물사업부에 눈독을 들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HMM(011200) 인수에 실패했던 LX그룹이 LCC의 전략적 투자자로 참여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현재 인수 후보로 나온 항공사들은 모두 자금 사정이 넉넉지 않다. 국내 LCC 1위로 화물 사업을 영위하는 제주항공은 지난해 9월 기준 부채비율이 473%다. 보유한 현금성 자산은 3000억원 정도다. 모그룹인 애경그룹이 지원해야 원활한 인수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나머지 항공사들 역시 이제 막 흑자를 내거나 빚을 갚고 있어 사모펀드의 추가 투자 없이는 신규 사업에 뛰어들기 힘든 상황이다. 에어인천은 소시어스PE, 이스타항공은 VIG파트너스, 에어프레미아는 JC파트너스를 최대 주주로 두고 있다.

아시아나항공 화물사업부를 이어받더라도 화주와의 계약이 계속 이어질지가 변수다. 운송업은 정시성, 안정성이 관건인 탓에 화주와 물류 업체의 신뢰 관계가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