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갈등,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전 세계 시장이 잘게 쪼개지고 있다.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은 각 국의 보호무역주의을 확산시켰다. 한국의 최대 수출국인 중국은 언제든 빗장을 걸어잠글 수 있다. 기존 시장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한국 기업의 도전을 살펴본다. [편집자 주]
지난달 4일(현지 시각) 한국타이어(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161390))의 헝가리 라칼마스(Rácalmás) 공장. 성형 공정의 한 작업자는 가로 1.5m 길이의 롤링 설비 앞에서 고무 시트를 옷감 다루듯 자르고 이어 붙이고 있었다. 고무 시트는 공기를 주입하자 럭비공 모양으로 부풀어 올랐다. 이어 옆면의 고정틀이 부푼 고무를 누르자 타이어 형태가 만들어졌다. 테슬라의 모델Y에 공급되는 '그린타이어(반제품 타이어)'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그린타이어는 타이어답지 않게 말랑말랑했고 타이어 특유의 홈(트레드 패턴)도 없었다. 밥솥 모양의 틀(몰드)에서 약 300℃로 25분 정도 찌는 과정을 거쳐야 완제품이 된다. 한국타이어 관계자는 "열과 압력을 가하는 가류(加硫) 공정을 거쳐야 유황 등 화학 약품이 반응하면서 탄력 있는 고무 재질과 트레드 패턴 등 타이어의 최종 형태가 만들어진다"고 말했다.
◇ 테슬라도 반했다... 獨 기가팩토리 증설 수혜
연간 1700만개의 타이어를 생산하는 한국타이어 헝가리 공장에는 2800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다. 유럽 지역 대부분의 완성차 회사에 신차용(OE) 타이어를 공급하고 있다. 스포츠카 브랜드 포르셰를 비롯해 BMW, 메르세데스 벤츠, 아우디 등이 한국타이어 고객이다.
최근 물량이 급증하는 브랜드는 2022년 독일 기가팩토리에서 양산을 시작한 테슬라다. 이 공장에서 생산되는 모델Y 대부분에 한국타이어 제품이 들어간다. 모델Y용 타이어는 소음을 줄이고 무거운 배터리 무게를 지탱할 수 있도록 타이어 내부의 흡음재(폼)를 삽입한 것이 특징이다.
전기차용 타이어는 일반 내연기관 타이어와 기술적인 차이가 있다. 엔진 차량은 속도가 서서히 붙지만, 전기차는 가속페달을 밟는 즉시 모터의 힘이 그대로 바퀴에 전달되고 무거운 배터리를 지탱해야 해 높은 내구성과 제동 성능이 요구된다. 전기차는 엔진이 없는 만큼 소음에도 민감하다.
한국타이어 관계자는 "흡음재를 적용하면 운전자가 불편을 느끼는 200~250㎐ 대역의 소음을 잡아주는 효과가 있다. 전기차용 타이어를 만들기 위한 화합물 종류는 50가지가 넘는데 어떤 성분을 얼마나 넣는지에 따라 타이어 특성이 달라진다"고 말했다. 배합 비율은 회사 기밀이다.
한국타이어는 테슬라 납품 물량이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테슬라는 독일 기가팩토리의 생산량을 현재 연간 50만대에서 100만대로 늘리는 방안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테슬라의 증설은 한국타이어에 기회가 될 수 있다. 테슬라 차량 가운데 유럽에서 가장 많이 판매되는 차종은 모델Y다. 이미 한국타이어는 테슬라 모델Y 라인을 한 차례 증설한 바 있다. 한국타이어는 모델Y를 시작으로 모델S, 모델X, 사이버트럭까지 납품 차종을 다양화하겠다는 목표다.
한국타이어는 전기차의 교체용(RE) 타이어 시장 공략도 강화하고 있다. 2022년에는 세계 최초로 전기차 전용 타이어 브랜드 '아이온'을 출시했다. 아이온은 설계 단계부터 고성능 전기차를 목표로 했고 포르셰의 전기차 '타이칸'도 한국타이어 제품을 사용하고 있다. 한국타이어는 전기차 F1대회인 '포뮬러e'에도 독점으로 타이어를 후원하고 있다.
임호택 한국타이어 헝가리공장 제조담당(상무)은 "현재 7개 자동차 회사에 399개 규격의 전기차 타이어를 납품하고 있고 개발 중인 타이어도 19종류에 달한다"며 "지난해 전기차용 타이어 비중은 4%였지만 올해는 10%가 넘어갈 것으로 전망한다"고 말했다.
◇ 2026년 상용차 타이어 양산 시작... 7500억원 투입
한국타이어 헝가리 공장은 버스·트럭용 타이어 전진 기지로도 변신하고 있다. 7589억원을 투자해 헝가리 공장 유휴 부지에 트럭·버스용 타이어 생산 시설을 구축하기로 결정했다.
그간 유럽에 납품하는 상용차 타이어는 대전공장에서 생산해 수출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하지만 유럽 상용차의 성장과 친환경차 전환을 앞두고 빠른 수급을 위해 현지 생산 체계를 구축하려는 것이다.
당초 한국타이어는 2018년 3월 약 3782억원을 들여 헝가리 공장 증설을 결정했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와 물류 대란, 원자재 가격 상승, 경기 둔화 등으로 투자를 연기 했다. 그러다 지난해 악조건에서도 매출 8조3942억원, 영업이익 7057억원 등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하면서 투자에 다시 속도가 붙었고 투자 규모가 배 이상 커졌다. 생산규모도 하루 1600개에서 2380개로 50% 가까이 늘렸다.
김형윤 한국타이어 헝가리공장장은 "상용차 타이어 생산 공장은 내년 3월 설계를 시작해 2026년 4월부터 양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며 "기존보다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 기술을 적용한 생산 라인을 개발 중이며, 유럽 현지에서 완성차 업체의 요구를 적시에 응답하고 제품화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