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서열 2위인 SK(034730)그룹이 60대 부회장 4명을 2선으로 후퇴시키고 50대를 전면에 내세우는 세대교체 인사를 7일 단행했다. 최태원 회장의 사촌 동생인 최창원 SK디스커버리(006120) 부회장이 그룹 2인자 격인 SK수펙스추구협의회(수펙스) 의장에 선임됐다. 최 회장의 장녀인 최윤정 SK바이오팜 전략투자팀장은 부사장급 임원으로 최연소 승진하는 등 'SK 오너가(家)'의 부상이 눈에 띈다.
SK의 전신인 선경, 유공 시절부터 그룹을 키워온 조대식 수펙스 의장을 비롯해 장동현 SK㈜ 부회장, 김준 SK이노베이션(096770) 부회장, 박정호 SK하이닉스(000660) 대표이사 부회장 등이 경영 2선으로 물러난다.
조 의장은 SK㈜ 부회장, 장 부회장은 SK에코플랜트로 각각 이동해 자문 역할을 할 전망이다. 김 부회장은 SK이노베이션 부회장과 박 부회장은 대표이사에서 물러나고 각각 부회장으로 신성장동력 발굴 등을 조언하게 됐다.
SK 부회장단의 평균 나이는 61.2세다. 선임 당시 50대였던 부회장단의 나이가 7년이 지나며 60대에 접어든 것이다. 재계에서는 글로벌 경기 불확실성이 커지는 가운데, 최태원 회장이 세대교체로 돌파구를 찾으려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룹의 2인자가 된 최창원 의장은 1964년생으로 최태원 회장보다 네 살 아래, 최태원 회장의 친동생인 최재원 SK 수석부회장보다는 한 살 아래다. 재계 관계자는 "최창원 의장은 그룹 내에서 업무 능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최재원 수석부회장과 함께 본격적인 사촌 경영을 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인사를 부회장단의 경영·투자 실패에 따른 문책성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SK그룹이 지난 2021년 말 11조원가량을 투자해 인수한 인텔의 낸드플래시 사업부(현 솔리다임)는 지난해에만 3조원이 넘는 순손실을 기록했다. 수소 사업 확장을 위해 SK E&S가 2021년 1조8500억원을 투자한 미국 수소연료전지 기업 플러그파워의 지분 가치는 90% 가까이 손실을 보고 있다. 이 밖에 대체육, 소형모듈원자로(SMR) 등 미래 사업을 위한 투자의 불확실성도 커지는 상황이다.
최근 11번가 콜옵션(미리 정한 가격에 살 수 있는 권리) 포기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지난 2018년 SK스퀘어는 5년 내 기업공개(IPO)를 조건으로 국민연금, 사모펀드(PEF), 새마을금고 등에서 총 5000억 원을 투자받았다. 하지만 상장에 실패했고, 매각까지 불발되면서 결국 콜옵션을 포기해 대주주의 지분 매각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여기에 SK그룹 주요 계열사의 실적도 좋지 않다. SK하이닉스(000660)는 글로벌 반도체 시장의 수요 침체로 올해 3분기 누적 영업손실 8조763억원을 기록했다.
2차 전지 사업을 이끄는 SK온은 올해 상반기 4762억원의 영업 손실을 낸 데 이어 3분기에도 861억원의 적자를 냈다. SK온은 포드와 세운 미국 합작 공장의 초기 수율(정상품 비율) 안정화에 애를 먹으면서 적자가 지속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석희 전 SK하이닉스 대표가 SK온 대표로 복귀한 것도 수율 안정화를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그룹의 현금 창출원으로 평가받던 SK텔레콤(017670)도 최근 정부의 통신비 인하 압박 속에 사업이 정체되는 상황이다.
재계 관계자는 "SK그룹은 반도체, 2차 전지, 통신 등 모든 사업군에서 다운 사이클을 겪고 있고, 투자 역시 과도하게 미래 지향적이며 거시 환경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온다"라며 "경영 악화로 세대교체와 총수 일가의 전면 배치가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