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서열 2위인 SK그룹의 연말 정기 임원 인사를 앞두고 부회장단의 거취에 시선이 쏠린다. 재계에 세대교체 바람이 부는 가운데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조직 쇄신 의지가 맞물리면서 부회장 일부 또는 전원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4일 재계에 따르면 SK그룹은 오는 7일 정기 임원 인사를 실시할 예정이다. SK그룹은 매년 12월 첫째 주 목요일에 인사를 해왔다. 올해 인사에는 평소보다 큰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최 회장이 7년 만에 서든데스(sudden death·돌연사)를 언급한 데다 투자 실패 등 인사에 영향을 미칠 변수가 많기 때문이다.
특히 부회장 4인방의 교체 여부가 그룹 안팎의 최대 관심사다. 조대식 SK수펙스추구협의회(수펙스) 의장(63)을 비롯해 장동현 SK㈜(SK(034730)) 부회장(60), 김준 SK이노베이션(096770) 부회장(62), 박정호 SK하이닉스(000660) 부회장(60) 등 4명은 지난해 말 인사에서 유임됐다. 당시 SK그룹은 글로벌 불확실성 대응을 위해 안정적인 인사에 초점을 맞췄다.
올해 주요 기업이 세대교체에 속도를 낸 만큼 SK 부회장단에도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간 재계 안팎에선 1~2명의 교체를 예상했으나 4명이 모두 바뀔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지난 2016년 선배 경영인들이 대거 교체될 당시 50대 젊은 참모로 줄줄이 승진한 이들은 지난 7년간 그룹을 이끌어 왔다.
최 회장은 지난 10월 최고경영자(CEO) 세미나에서 서든데스를 언급하며 생존과 변화를 강조하기도 했다. 최 회장이 서든데스 용어를 처음 꺼낸 건 2016년 그룹 확대경영회의 때였다. SK그룹은 당해 말 인사에서 핵심 경영진을 50대로 전면 교체했다. 이번 CEO 세미나에서 최 회장은 주요 계열사의 투자 실패 사례를 직접 언급하면서 경영진을 질타하기도 했다.
시장에서 투자자들은 최근 몇 년 동안 반복된 SK그룹의 투자 손실에 우려를 표한다. SK하이닉스(000660)가 인수한 솔리다임(전 인텔 낸드플래시 사업부)은 적자를 이어가고, 수소 사업 확장을 위해 SK E&S가 투자한 수소연료전지 기업 플러그파워 지분 가치도 하락을 거듭하고 있다. 대체육, 소형모듈원자로(SMR) 등 미래 사업을 위한 투자의 불확실성도 커지는 상황이다.
SK그룹 2인자로 꼽히는 조대식 의장은 최 회장과 같은 1960년대생으로 부회장단 가운데 나이가 가장 많다. 지난해 4연임에 성공한 그는 현재까지 SK㈜ 사내이사직을 유지하고 있다. 조대식 의장은 SK㈜를 단순 관리형 지주회사에서 투자 전문 지주사로 탈바꿈시킨 데 이어 최고협의기구를 이끌면서 그룹 체질 개선을 주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조대식 의장은 최 회장의 경영 철학인 딥 체인지(근본적 변화)를 기반으로 파이낸셜스토리를 완성해야 한다는 점을 꾸준히 강조해 왔다. 파이낸셜스토리는 최 회장이 2020년 제시한 개념이다. 매출이나 영업이익 등 기존 재무성과뿐 아니라 시장이 매력적으로 느낄 만한 목표, 구체적인 실행 계획을 담은 성장 스토리를 만들어 고객, 투자자들의 신뢰와 공감을 끌어내야 한다는 전략이다.
장동현 부회장은 SK㈜를 거쳐 SK텔레콤(017670)에서 재무담당 임원을 지냈고 전략기획, 마케팅 관련 업무를 맡아왔다. 그룹 내 손꼽히는 전략기획통으로 최 회장의 신임을 받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투자 전문 지주사로서 SK㈜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SK텔레콤을 이동통신사에서 플랫폼 기업으로 변화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준 부회장은 SK이노베이션이 기존 정유사업에서 화학, 배터리, 소재 등 신사업으로 포트폴리오를 확장하는 기반을 마련했고, 최근에는 친환경 사업이 실질적 성과를 내게 하는 데 공을 들여왔다. 박정호 부회장은 1994년 한국이동통신, 2000년 신세기통신, 2011년 하이닉스, 2017년 도시바 메모리사업, 2018년 ADT캡스 등 그룹의 주요 인수합병(M&A)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승부사로 통한다.
이번 인사에서 조대식 의장이 물러나게 되면 후임으로는 최창원 SK디스커버리(006120) 부회장이 거론된다. 최창원 부회장은 고(故) 최종건 SK 창업주의 셋째 아들로 최 회장의 사촌동생이다. 최창원 부회장은 현재 SK경영경제연구소 부회장을 겸임하면서, 그룹의 싱크탱크를 이끌고 있다. SK디스커버리는 SK가스(018670), SK케미칼(285130), SK플라즈마 등을 자회사로 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