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수력원자력이 국가정보원이 주관하는 ‘가동 원전 핵전자기펄스(EMP·Electromagnetic Pulse·핵폭발에 의해 생기는 전자기 충격파) 영향 평가’를 받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핵EMP 영향 평가는 핵EMP가 발생했을 때 ▲발전소 주요 설비 취약점 탐지 ▲피해 복구 시간 산정 ▲발전소 정상 운전 등을 측정·분석해 대응책을 마련하는 과정이다.

5일 원전 업계와 정부 등에 따르면 국정원은 한수원이 운영하는 울산 새울1호기, 영광 한빛5호기 원전을 대상으로 핵EMP 영향 평가를 진행하고 있다. 한수원이 핵EMP 평가를 받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원전이 핵EMP 공격을 받아 제어 불능 상태가 되면 원자로 냉각 등이 불가능해진다. 또 핵분열이 계속 일어나거나 원자로 폭발, 방사선 누출 등의 문제도 발생할 수 있다. 평가는 올해 말까지 진행되며 결과는 내년 1월 나온다.

새울 원자력 발전소. /한국수력원자력 제공

국정원은 2019년부터 ‘EMP 취약점 분석·평가 기준’에 따라 공공분야 주요 정보통신기반 시설을 대상으로 시험평가를 진행해왔다. 국정원은 문재인 정부 시절에도 한수원에 핵EMP 영향 평가를 요청했으나 산업통상자원부와 한수원은 “자체적으로 연구과제를 수행했다”며 평가를 받지 않았다. 당시 한국전력(015760) 산하의 서부발전과 중부발전만 EMP 평가를 받았다.

한수원은 국가 주요 방호시설 중 최고등급인 ‘가’급으로 분류돼있다. 당시 업계에서는 산업부와 한수원이 핵EMP 평가를 거절한 이유가 북한 눈치를 봤기 때문이라는 말이 나왔다. 문재인 정부는 북한과의 관계 개선에 공을 들이고 있었는데, 핵EMP 평가가 전시(戰時)를 염두에 둔 평가이기 때문이다.

한수원 관계자는 “국가정보원의 핵EMP 영향 평가는 권고 사항으로 당시 관련 연구용역을 수행하고 있었기에 평가를 신청하지 않았다. 최근 북한의 핵EMP 공격에 대한 우려가 확산하면서 검증 차원에서 평가를 받게 됐다”고 말했다.

핵EMP 평가는 총 4단계로 구성된다. 우선 취약점 분석·평가 계획(1단계)을 만든다. EMP 공격으로 발전소 설비가 고장, 오동작하는 경우 발생하는 피해가 무엇인지 검토한다. 2단계에는 설비를 시설별로 분류하고 EMP 취약 목록을 작성해 설비 중요도에 따라 상·중·하로 나눈다.

3단계는 발견된 취약 설비에 대한 EMP 방호 대책을 설계한다. 고장 복구 가능 시간, 중요 데이터 손실 가능성, 이중화 점검, 조직·인적 보안 취약점 등을 점검하는 식이다. 마지막으로는 발견된 취약점별로 위험 등급을 분류한다. 위험 1등급은 조기 개선, 2·3등급은 중장기 개선을 의미한다.

/조선DB

북한은 지난 3월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딸 김주애가 참관한 ‘핵반격 가상 종합전술훈련’을 진행했다. 단거리 탄도미사일(SRBM)의 500m 상공 공중 폭발을 시도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실험이 EMP 실험과 관련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

한 군사 전문가는 “북한이 최근 작전지휘체계(C4I)를 마비시키는 특수기능전투부를 강조하면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사진을 공개한 것은 파괴가 아닌 전자기기를 마비시킬 수 있는 핵EMP 시험 가능성을 의미한다”며 “에너지 안보에서 가장 중요한 발전원이 원전이고 사고가 발생할 경우 피해가 막대한 만큼 EMP 방호 능력을 갖춰야 한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