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수립할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는 단순히 경제성장률에 기반한 전력 수요가 아니라 탄소 중립까지 고려해 두 자릿수 이상의 신규 원전을 포함해야 합니다."
정범진 한국원자력학회 학회장(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은 지난 11일 조선비즈와의 인터뷰에서 "2019년 기준으로 화석에너지 사용량은 총 232백만TOE(석유환산톤)이고 무탄소로 가려면 원전 357기가 필요하다. 이를 모두 원전으로 대체할 수는 없지만, 탄소 중립을 하려면 원전 1~2개를 늘리는 수준으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이달 1일 제36대 원자력학회장으로 취임했다. 정 교수는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대해 "과학의 영역에 정치가 개입한 결과"라고 했다. 그는 "탈원전은 과학적 사실이 아니라 잘못된 인식과 가짜 뉴스, 정치와의 결탁 등에 의해 결정됐다"며 "에너지는 과학이고 생존의 문제다. 정치가 개입해선 안 된다"라고 말했다. 다음은 정 교수와의 일문일답이다.
─원전 생태계 복원에서 시급한 과제는 무엇인가.
"첫째는 부지다. 지난 정부에서 영덕 천지 1·2호기와 삼척 대지 원전 1·2호기를 백지화했고 부지마저 개발 계획을 철회했다. 윤석열 정부가 신규 원전을 추진하지만 부지가 없다. 최소한 영덕, 삼척의 부지를 다시 확보하려는 공문이나 지정 고시 등의 행정 행위가 필요하다.
또 우선 공급 전원의 순위를 바꿀 필요가 있다. 태양광, 풍력은 원료비가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핵연료를 연소하는 원전보다 우선순위에 있다. 하지만 시설 투자 등 전체 비용을 감안하면 원전이 저렴하다. 한국전력(015760)이 값싼 원전 대신 비싼 재생에너지를 구입해 공급하는 꼴이다. 이런 상태로는 한전이 적자를 벗어나기 어렵다."
─신규 원전은 몇 기나 필요한가.
"그간 전력계획은 경제성장률에 따른 전력 수요만을 놓고 심의했지만 지금은 탄소 중립까지 고려해야 한다. 11차 전력계획에는 두 자릿수의 신규 원전을 검토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대한 평가는.
"탈원전은 불행한 일이었다. 정치가 개입하지 않아야 할 영역에 개입한 결과다. 식량, 국토 안보, 환경, 에너지 등은 없으면 안 되는 절체절명의 것들이다. 2017년부터 탈원전으로 한전이 큰 적자를 볼 수 있다는 문제를 제기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문제를 지적하는 전문가의 얘기를 듣지 않았다는 점이 문 정부의 패착이다."
─탈원전 정책의 대못으로 보는 포인트가 있나.
"문재인 정부 시절 원전 학계의 연구는 원전 안전, 해체, 폐기물, 방사선 등 4가지 분야로 제한됐다. 미래형 원전 개발, 핵심기술 국산화 등 진흥과 관련된 연구에는 투자가 없었다. 지난 5년간 연구 공백이 너무 크다. 최근 세계적인 추세인 소형모듈원전(SMR) 개발에 한국이 참여하고 있지만, 선진국보다 굉장히 늦은 상태다. 연구개발 체계의 정상화도 고민해야 한다."
─원전은 왜 필요한가.
"지난해 원유·가스·석탄 등 3대 에너지 수입액이 1년 새 70% 불어난 1908억 달러(255조1000억 원)를 기록했다. 사상 최고치다. 에너지를 수입하는 데 하루에 7000억원이라는 엄청난 돈이 들어간다. 원전은 자원을 외국에서 수입하지 않아도 되고 장기간 보관할 수 있다. 석유, LNG처럼 가격 등락이 심하지 않다. 자원이 없는 우리나라에서는 경제성, 에너지 안보, 수출 육성 등 여러 측면에서 원전이 유리하다. 기후 온난화에 대처하는 유일한 방법도 원전이다."
─원전 업계는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를 부정하나.
"절대 부정하지 않는다. 아무리 원전이 좋아도 원전 하나에 의존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았다. 에너지원 다변화는 중요하다. 태양광은 날씨에 따라 전력의 변동성이 심하다. 풍력은 바람이 부족할 수도 있다. 이런 변동성을 대처하는 데 지금까지 에너지저장장치(ESS)가 활용됐지만 비용이 너무 비싸다. 이런 문제는 석탄 발전소가 일정 부분 보완해주면 된다.
LNG 발전은 단기적으로 출력을 높일 때 좋지만 비싸다. 결국 원전, 석탄, LNG가 모두 필요하다. 재생에너지는 전 세계적으로 연료 없이 발전할 수 있다. 다만 그 비중은 정치가 아니라 과학과 경제적 합리성으로 결정해야 한다. 세상에 나쁜 발전원은 없다."
─에너지 믹스(mix) 비중은 어떤 기준으로 결정하나.
"지금 당장은 전기요금 안정과 한전의 적자를 줄일 수 있도록 원전 가동을 늘리는 방향으로 기준을 잡아야 한다. 미래 세대를 살리기 위해 현세대가 죽을 순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