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찾은 고양 삼송테크노밸리. 이곳에는 컴팩트 디스크(CD)를 대체할 차세대 음반인 '키트(KiT·Keep in Touch)앨범'을 개발한 뮤즈라이브의 생산공장이 있다. 660㎡(200평) 규모인 이 공장의 절반은 제작이 완료된 제품이 적재돼 있었고, 나머지 공간에는 기계와 5명 남짓의 관리인력이 상주하고 있다. 연간 450만개의 앨범을 생산할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만큼 작업자가 적었다.
외주사에서 인쇄회로기판(PCB)에 스피커를 끼워 납땜을 완료한 상태로 뮤즈라이브에 제품을 보내면 제작 공정이 시작된다. 제작 공정은 총 3단계로 진행된다. 첫 번째 공정에서는 기판에 부착된 스피커의 성능을 확인하고, 검사 결과를 기계에 부착된 모니터에 표시한다. 제품 10개 묶음을 검사하는 데 1초가 채 걸리지 않았다.
두 번째 공정에서는 전자 기판에 배터리와 펌웨어(전자기기를 구동·제어하는 소프트웨어)를 장착한다. 기계가 직접 스피커 검증을 마친 제품을 집어 배터리를 부착하고 전자 부품에 펌웨어를 설치한다. 2공정까지 마치면 음악을 저장할 수 있는 전자부품이 완성된다. 통상 기획사들은 펌웨어까지 장착된 부품만 받아 음악을 업로드하고, 덮개를 직접 제작한다.
기획사나 가수 측이 커버 제작까지 의뢰할 경우 3공정이 가동된다. 3공정에서는 플라스틱 커버에 2공정을 거친 전자 부품을 넣어 조립을 마무리한다. 1~3공정을 다 마치기까지 걸린 시간은 8.6초다. 박종성 뮤즈라이브 CTO는 "2공정까지 거친 반제품을 미리 생산해두고, 커버 제작 의뢰가 들어오면 3공정을 집중 가동해 제품 생산 시간을 단축하고 있다"고 말했다.
◇ 세계 K팝 음반 점유율 10%
키트앨범은 스마트폰에 갖다 대면 음악과 영상을 재생할 수 있다. 별도 재생기기가 필요하지 않고 스마트폰만 있으면 된다. 뮤즈라이브 측에 따르면 키트앨범은 CD와 LP 등 전 세계 K팝 실물 음반 시장(약 5000억원 규모)에서 약 10%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사용률(구매 후 실제 사용하는 비율)은 CD보다 높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석철 뮤즈라이브 대표는 키트앨범의 개발과정을 진두지휘했다. 대학생 시절 록 밴드의 보컬을 할 정도로 음악을 좋아했던 석 대표는 의류·섬유·정보통신(IT) 등 다양한 분야에서 창업 경력이 있다. 음원시장이 커지는 상황에서도 CD와 LP를 중심으로 한 실물음반 시장 규모가 유지되는 것을 보고 2012년 앨범 제작 사업을 시작했고, 연구개발을 거쳐 2017년 키트앨범을 출시했다.
처음에는 이어폰 연결단자에 제품을 꽂으면 음악이 재생되는 방식을 사용했다. 그러나 이어폰 연결단자를 없앤 스마트폰이 나오면서 연결 방식을 바꿨다. 현재는 사람이 들을 수 없는 초음파 형태로 보안키를 쏘는 장치를 앨범에 내장했다. 스마트폰이 이를 인식하면 전용 애플리케이션(앱)이 구동되면서 음악이 재생된다. 인식된 다음에는 앨범을 분리해도 일정 기간 음악을 감상할 수 있다.
석철 대표는 "공기 중으로 신호를 보내 보안키를 인식하는 기술을 구현하기 위해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면서 "이론적으로 기술을 구현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한 뒤에도 문제없이 작동하도록 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고 했다.
◇ 영국·독일·호주 차트 반영… 오리콘·빌보드도 집계 검토
세계 음반 시장에서도 주목 받고 있다. 그간 근거리무선통신(NFC)·QR코드 기반 음반 등 다양한 유형의 음반이 개발됐지만, 최초 인식 후에는 앨범이 없어도 스마트폰에서 자유롭게 콘텐츠를 재생할 수 있어 이용가치가 떨어졌기 때문이다. 반면 키트앨범은 다른 스마트폰에 앨범을 연결하면 이전 기기에서 재생할 수 없다.
NFC·QR코드 기반 앨범을 정식 음반으로 집계하지 않던 해외 음반 차트에서도 키트앨범을 정식 음반으로 인정하고 있다. 영국의 오피셜차트컴퍼니(OCC)와 호주의 오스트레일리아음반산업협회(ARIA) 차트 등이 키트앨범 판매량을 집계하고 있으며, 일본 오리콘 차트와 미국 빌보트 차트도 키트앨범을 정식 음반으로 집계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판매량도 증가하고 있다. 2017년 출시 첫해 판매량은 1만7000개에 불과했지만, 현재 연간 120만~130만개가 팔리고 있다. 올해 5월 기준 누적 판매량은 600만개를 넘어섰다. SM(에스엠(041510))·YG(와이지엔터테인먼트(122870)) 등 국내 기획사 소속 가수는 물론 스눕독과 제이슨 므라즈 등 해외 가수들도 키트앨범을 발매하고 있다.
석 대표는 "내년 하반기에는 키트앨범이 빌보드 음반차트에 집계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면서 "키트앨범이 세계 표준이 되면 음악뿐 아니라 다양한 콘텐츠를 앨범에 담아 출시하는 게 장기적인 목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