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은영 님. 저는 인공지능(AI) 디자인 파트너입니다. 오늘은 무엇을 만들고 싶으신가요?”
‘프레젠테이션’, ‘문서’, ‘웹페이지’ 세 가지 선택지 중 프레젠테이션을 선택한 뒤 ‘2024년 AI 산업 트렌드’라는 주제를 입력하자 “아이디어를 좀 생각해 볼게요”라는 메시지와 함께 7개 목차가 제시됐다. ‘계속’을 선택하니 테마를 고르라는 안내가 이어졌고, 선택과 동시에 AI는 화려한 삽화가 포함된 프레젠테이션 슬라이드를 생성해 내기 시작했다. 주제만 입력했을 뿐인데 단 80초 만에 8장의 슬라이드가 만들어졌다.
이는 미국 실리콘밸리의 3년 차 스타트업 ‘감마(Gamma)’가 개발한 동명의 자료 생성 도구다. 내용 없이 주제만 입력해도 생성형 AI가 스스로 내용을 구성해 초안을 제시한다. 텍스트를 입력하면 이를 기반으로 내용을 정리하고 요약해 자료를 만든다. 자료에 삽입된 그림과 그래픽 역시 AI가 실시간으로 생성한 것이다. 윈도우 애플리케이션(앱)이나 웹사이트에서 이용할 수 있다. 완성본을 외부에 공유하고 댓글을 통해 의견을 주고받을 수도 있다.
감마는 중국계 미국인인 그랜트 리(Grant Lee) 최고경영자(CEO)가 전 직장 동료였던 제임스 폭스(James Fox), 존 노로냐(Jon Noronha)와 함께 창업했다. 직원 12명의 작은 회사지만, 창업 이듬해인 2021년 미국의 벤처캐피털(VC)인 액셀(Accel) 등으로부터 총 1000만달러(약 134억원)의 초기 투자를 받았다. 최근엔 전 세계 이용자가 300만명을 돌파하며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흑자전환에도 성공했다.
감마는 한국 이용자 10만명을 확보하는 등 국내에서도 뜨거운 반응을 얻어, 첫 번째 현지 언어 서비스 국가로 한국을 점찍었다. 국내 이용자를 만나기 위해 서울을 찾은 그를 지난 17일 강남의 한 호텔에서 만났다.
―창업 계기는.
“과거 컨설팅 일을 할 당시 프레젠테이션 슬라이드를 만드는 데 많은 시간을 보냈다. 텅 빈 슬라이드를 마주한 순간, 마치 슬라이드 ‘디자이너’가 된 것처럼 텍스트 상자를 이리저리 옮기고 크기를 늘리고 정렬하고 배경색을 고르는 데 시간을 쏟아야 했다. 그렇다고 해서 매번 만족스러운 결과물이 나오는 것도 아니었다. 자료를 디자인하는 데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셈이었다.
어떻게 하면 시간 낭비 없이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더 간편하게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감마 창업으로 이어졌다. 감마는 AI가 ‘디자인 파트너’가 되어주는 설루션이다. 작업하는 동안 누군가가 옆에 앉아 중간중간 조언을 해주고 초고를 완성본으로 만드는 과정을 도와주는 개념이다. 또 감마는 기기 제한 없이 심지어는 모바일에서도 자료를 만들 수 있다. 개인 노트북에서 작업하던 프레젠테이션을 자신의 스마트폰이나 동료의 태블릿에서도 열어볼 수 있다.”
―비슷한 도구로 노션(Notion)이 꼽힌다. 감마는 무엇이 다른가.
“노션이 내부 협업에 집중한 도구라면 감마는 외부 프레젠테이션을 돕는 도구다. 노션은 조직 내부의 프로젝트 관리가 체계적으로 이뤄지고 있지 않은 데 대한 해결책으로 만들어진 서비스다. 이와 달리 감마는 이용자들이 자신의 고객과 외부 파트너에게 자신의 콘텐츠를 보여주고 정보를 공유하는 데 활용한다.
기능 측면에서는 생성형 AI를 쓰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점이다. 감마는 오픈AI의 GPT를 비롯해 SK텔레콤(017670)이 1억달러(약 1339억원)를 투자한 앤트러픽 등 다양한 생성형 AI를 함께 쓰고 있다. 각사의 AI 기술이 계속 발전하고 있기 때문에 어떻게 조합해야 이용자에게 최상의 결과를 제공할 수 있는지 실험 중이다.”
―인기 비결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마이크로소프트의 파워포인트와 같은 레거시 소프트웨어의 한계를 해결하고 새로운 접근 방식을 제공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감마는 파워포인트에서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스타일을 제공한다. 파워포인트는 지난 30여년간 16대9 비율의 슬라이드를 기본으로 제공해 왔다. 그런데 지금은 기기 환경이 완전히 바뀌었다. 사람들은 스마트폰에서 모든 것을 한다.
감마는 모든 기기에서 언제나 접근 가능할 뿐만 아니라 기기별 환경에 맞는 스타일도 함께 제공한다. 파워포인트 이용자는 전 세계에 10억명가량으로 추산된다. 감마가 파워포인트의 대체재나 보완재가 된다면 이 인구를 흡수할 수 있게 된다.”
―AI와 이용자 사이에 균형을 맞추는 것이 중요해 보이는데.
“두 가지 모두 놓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편집 기능을 다양하게 넣었다. AI가 생성해 내는 것들은 어디까지나 초안일 뿐이다. 이 초안을 토대로 이용자가 얼마든지 수정할 수 있다. 직접 손으로 하나하나 고칠 수도 있고 AI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예를 들어 ‘텍스트 내용을 표로 정리해 줘’, ‘내용과 어울리는 이미지를 만들어서 삽입해 줘’와 같이 AI 도우미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다.”
―많은 AI 기업은 제품 개발에 비용을 쏟느라 수익성 저하 문제를 겪는다. 흑자 비결이 무엇인가.
“비결이라고 할 건 없다. 감마의 주된 수익모델은 이용자가 지불하는 구독료다. 이용자가 기꺼이 비용을 지불하고 싶어하는 제품을 만들고 조직을 효율적으로 유지하는 것, 그뿐이다. (흑자가 나서) 투자 유치를 마무리한 지 꽤 됐지만 아직도 투자금의 절반이 남아있다. 후속 투자 역시 당분간은 계획이 없다.
감마는 직원이 12명뿐인 작은 회사지만, AI 기술이 이렇게 빨리 발전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작은 조직이 더 민첩하게 움직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고용 등) 한쪽에만 너무 많이 투자하면 새로운 것에 적응하거나 변화를 꾀하는 데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게 된다.”
―한국 방문은 어떤 계기로 이뤄졌나.
“이용자들을 만나보고 싶었다. 한국의 초기 이용자 중 많은 사람이 여전히 제품에 열성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는데, 그들로부터 피드백을 듣고 서비스 이용자의 요구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 한국에 왔다. 글로벌 사업은 초기에 구축하는 것이 더 용이하기 때문이다.”
―한국 시장과 한국 이용자만의 특성이 있다면.
“한국은 시장의 표준이 되는 곳이다. 열성적인 초기 이용자가 많고 제품력을 중시해 이용자들의 눈높이가 높다. 노션이 처음 출시됐을 때 가장 발 빠르게 받아들였던 시장이기도 하다. 당시 노션이 처음으로 현지화 서비스를 내놓은 국가가 한국이다. 무료 서비스에서 유료 서비스로 전환하는 비율이 가장 높았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선도기업이 되기 위해선 반드시 한국 시장에서 성공을 거둬야 한다고 본다. 감마는 이제 막 한국어 서비스를 시작했는데, 노션과 같은 현상이 나타나길 바라고 있다.”
―한국 지사도 열 계획인가.
“지금 당장은 어렵겠지만 앞으로 필요할 것 같다. 한국에 직원을 두는 것이 현지 이용자와 접점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본다. 일회성 만남이 아니라 주기적으로 이용자들과 만나면 앞으로 있을 새로운 기능이나 신제품 출시에 대한 이용자 반응을 수집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
―감마는 앞으로 어떤 식으로 기능을 고도화할 예정인가.
“감마의 첫 AI 도구는 텍스트 생성으로 시작했다. 지금은 텍스트뿐만 아니라 이미지 생성도 시작했다. 미래에는 오디오 등 다양한 미디어 생성을 통해 더욱 풍부한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다. 궁극적으로는 프레젠테이션과 문서, 웹페이지 등을 만들 때 더 이상 아름다운 디자인을 위해 시각 자료를 찾아 헤매지 않아도 되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