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에 따르면 국민 4명 중 1명 이상은 생애 한 번 이상 정신질환을 앓는다. 전 세계 인구 중 치료가 필요한 정신질환자는 총 8억명이라고 한다. 코로나19를 계기로 시장이 커지다 보니 2020~2021년에만 정신건강 관련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 비상장사)이 10개가 나왔다. 우리는 정신건강 관리에 꼭 필요한 심리검사에 인공지능(AI)을 적용해 검사를 표준화하고자 한다.”

희랩은 2021년 창업한 초기 스타트업이다. HTP(집·나무·사람) 그림 검사를 AI로 분석하는 설루션을 개발했다. HTP검사는 1948년에 개발된 대표적인 그림 검사로 집, 나무, 사람 그림을 그린 뒤 그림에 투영된 내면을 파악하는 검사다. 희랩의 ‘나다움’ 애플리케이션(앱)에 그림을 올리거나 앱에서 직접 그리면 1~2초 만에 검사 결과를 받을 수 있다.

희랩은 학교와 기업에 분석 설루션을 제공하는 것을 넘어, 오프라인 심리상담센터를 개설하고 프랜차이즈화할 예정이다. 북미 진출도 준비 중이다. 희랩은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재)예술경영지원센터가 주관하는 ‘2023 예술분야 초기창업 지원 사업’에 선정됐다. 센터는 예술 유통 활성화와 예술기업 경쟁력 강화를 지원하는 기관이다. 예술 분야 사업모델을 발굴하고, 교육·컨설팅, 투자 등을 통해 예술기업의 단계별 성장을 돕는다. 전세희 희랩 대표를 최근 서울 용산구에서 만났다.

전세희 희랩 대표. 희랩은 전남대학교병원과 손잡고 그림검사 데이터를 수집하고 라벨링해 AI로 분석하는 설루션을 개발했다. /희랩 제공

―미술과 심리학을 전공했다고 들었다.

“고등학교 때 어떤 작가의 그림을 보고 치유받는 느낌을 받아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심리학은 사람에 대해 궁금한 게 많아서 미술과 같이 전공하게 됐다. 캐나다에서 대학을 나왔는데, 코로나19 때 ‘코로나 블루(코로나19로 인한 우울감)’를 겪고 한국행을 결심했다. 입국 후 한국에는 어떤 마음 돌봄 서비스가 있는지 알아봤는데 구청으로부터 도움을 받을 방법이 기대한 것만큼 많지 않았다. 한국은 북미보다 스마트 인프라가 잘 되어 있으니, 내가 공부한 것을 활용해 간편한 서비스를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창업으로까지 이어지게 됐다.”

―북미의 정신건강 관리 인프라는 어떤가. 한국과 차이가 있다면.

“정신건강에 대한 인식이 아주 다르다. 어느 나라나 초등학교 학급에는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 ADD(주의력 결핍증) 학생이 종종 있다. 정도에 따라 다르겠지만 병처럼 여길 만큼 심각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ADHD, ADD가 있어도 훌륭하게 자라서 사회에서 좋은 영향을 끼치는 사람이 많다. 북미의 학교들은 이런 질환들을 일상에서 편안하게 받아들인다. 그러다 보니 어른이 돼서도 정신질환을 무서워하지 않게 된다. 그들에게 정신질환은 엄청난 사건이나 무서운 것이 아니라 관리를 통해 스스로 다룰 수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한국 사회는 정신질환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이다. 그래서 ‘멘탈 케어’라는 말은 무리 없이 받아들여지지만, 같은 뜻인 ‘정신건강 관리’는 거부감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다. 사실 ‘치료(treatment)’라는 것도 꼭 약을 먹는 것만을 뜻하지는 않는다. 진단을 위한 검사부터 심리상담까지, 또는 이 과정에서 마음의 위안을 받는 것도 치료라고 볼 수 있다.”

희랩이 운영하고 있는 HTP 검사·아트테라피 앱 '나다움'. /나다움 캡처

― ‘나다움’의 서비스를 소개해달라.

“HTP검사를 앱으로 할 수 있는 서비스다. 집, 나무, 사람 그림을 AI가 분석하고 결과를 바탕으로 아트 테라피를 제공한다. 매일의 감정상태를 기록하고 일기도 쓸 수 있다. 그림 검사는 태블릿PC, 스마트폰 등 모바일기기 앱에서 직접 그리거나 종이에 그린 그림을 사진으로 찍어 업로드하면 된다. 현재 AI 분석을 고도화하고 있다. 전남대병원과 스트레스 대처 방안을 보는 ‘빗속의 사람 그림 검사(PITR)’도 모바일 버전으로 개발 중이다.”

―분석을 표준화하기 위해 희랩은 데이터와 AI를 어떻게 활용하나.

“희랩이 심리검사를 나가는 유치원과 전남대병원 등에서 검사 데이터를 수집한다. 그다음엔 이 데이터를 가공하고 라벨링해 의미있는 데이터로 만드는 작업을 하고 그 데이터를 AI에 학습시킨다. 원본은 지금까지 7만개 정도가 모였는데, 사실 만족할 만한 결과를 낼 만큼 충분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수집 가능한 데이터들은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모아 AI의 데이터 학습을 고도화할 예정이다.”

―주로 기업이나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사업을 한다.

“정부가 학교에 지원하는 정신건강 관리 사업이 있다. 이 때문에 각 학교에는 심리상담 선생님이 계시는데, 나다움은 그들의 업무를 돕는 도구가 될 수 있다. 선생님 한두 명이 전교생을 상대로 그림 검사를 하기 쉽지 않은데 나다움을 이용하면 한 번에 대량 검사가 가능하고, 선생님들은 AI 분석 결과를 참고해 학생을 지도할 수 있다.

성인은 건강검진센터의 스트레스 척도(PSS) 검사에 그림 검사를 추가하는 방안이 있다. PSS 검사와 그림 검사를 병행하면 검사의 신뢰도가 높아진다. 특히 지금 개발 중인 PITR 그림 검사는 스트레스 대처 방안을 보는 검사인데, PSS와 함께 진행하면 검진자의 스트레스 지수만 알게 되는 것이 아니라 이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까지 가이드를 줄 수 있게 된다.”

―희랩은 동종 업계 기업과 무엇이 다른가.

“이 분야 스타트업은 크게 비대면 상담, 시청각 콘텐츠, 소셜미디어(SNS) 형태로 정신건강 관리를 돕는 데 치중돼 있다. 희랩은 관리뿐만 아니라 검사에서 시작해 전 과정을 아우른다는 것이 특징이다. 또 그 수단으로 미술을 활용하고 있다는 것도 차별점이다. 설루션 개발을 위해 희랩은 대전에 연구소를 두고 있고, 전북대병원과 협업하고 있다. 각 분야 교수님으로 이뤄진 자문단도 갖추고 있다.”

전세희 희랩 대표가 지난달 19일 광주광역시에서 열린 삼성 헬스 스타트업 데이에서 사업모델을 발표하고 있다. /희랩 제공

―첫 글로벌 진출로 북미를 점찍었다.

“북미는 이 시장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 시장 진입이 용이하다. 정신질환 진단과 치료를 받은 인구 비중이 국내는 10~12%에 그치는 데 반해 북미는 40~50%에 달한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이 30%가량인 점에 비추면 국내 시장이 작은 편이긴 하다.

소득 수준과 학구열이 높은 미국 샌프란시스코, 뉴욕 등을 먼저 공략하려 한다. 이 지역이 정신건강 관리에 대한 인식이 높은 것도 있지만 실제로 수요도 많기 때문이다.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예를 들면, 구글과 같은 기업도 직원의 정신건강을 관리하는 데 관심이 많다. 경쟁에 지쳐 정신적 어려움을 호소하는 아이들도 많다. 극단적 선택을 하는 아이들의 안타까운 이야기가 뉴스에 나오기도 하고, 유명 대학들은 시험 기간에 옥상 문을 잠글 정도다. 북미는 비대면 진료가 이미 자리를 잡은 만큼 적극적으로 사업을 해 나갈 예정이다.”

―희랩의 성장 전략이 궁금하다.

“창업한 지 이제 3년 차에 접어들었지만, 창업 3개월 만에 1억3000만원의 매출을 올렸다. 지난해엔 전년 대비 198% 성장을 이뤘다. 다만 올해는 매출 성장보다는 연구·개발과 사업 확장에 더 초점을 맞출 예정이다. 예술경영지원센터의 지원을 받아 AI 그림 분석 기술과 아트 테라피에 활용될 수 있는 다양한 그림 데이터를 고도화할 예정이다.

또 온라인 기반의 설루션에 그치지 않고 오프라인 심리상담센터 설립을 추진 중이다. 브랜드를 프랜차이즈화해 서울 강남, 대전, 광주, 제주, 부산에 내려고 한다. 주로 소득 수준과 학구열이 높은 지역이다. 센터를 운영하면서 더 많은 데이터가 모일수록 검사 설루션과 테라피 콘텐츠는 더 정교해질 것으로 본다.”